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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쓴 하드 SF인척하는 TS후타백합야설앱에서 작성

goza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7.03 03: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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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인과율의 시체 위에 쓰인 이야기
우주는 거대한 이야기책과 같다. 모든 것은 ‘원인’이라는 이름의 잉크로, ‘결과’라는 이름의 문장을 써 내려간다. 돌을 던졌기에 파문이 일고, 씨앗을 심었기에 싹이 튼다. 이것은 신성하고도 절대적인, 세상을 떠받드는 가장 단단한 법칙이다. 시간은 언제나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며, 그 누구도 이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하지만 아주, 아주 드물게, 이 완벽한 이야기책의 페이지가 찢겨 나가는 순간이 있다.

우주의 질서에 생긴 미세한 균열. 모든 물리 법칙이 붕괴하고, 시간의 흐름마저 의미를 잃는 지점. 학자들은 그것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 부르지만, 그 실체는 훨씬 더 혼돈스럽고 기괴한 것이다. 바로 인과율의 죽음.

이 검은 노트는, 그 죽음의 파편이다.

노트는 마법의 물건이나 악마의 계약서 같은, 그런 낭만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것은 훨씬 더 근원적이고, 비인간적이며, 그래서 더 잔인하다. 이 노트의 페이지 위에서는, 우주의 가장 신성한 법칙이 역전된다.

결과가, 원인을 창조한다.

마치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써 내려가는 것과 같다. ‘주인공은 왕이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 라는 결말을 먼저 못 박아 버리면, 그 앞의 모든 챕터는 주인공이 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로, 그의 영웅적인 서사로 강제로 채워져야만 한다.

노트에 무언가를 적는 행위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출렁이는 양자의 바다에, 아주 선명하고 구체적인 ‘결과’라는 이름의 닻을 내리는 것과 같다. ‘가난뱅이가 하룻밤 사이에 왕이 되었다’는, 이 현실에 존재해서는 안 될 이상적인 결과물. 그 결과가 ‘관측’되고 ‘정의’되는 순간, 우주는 이 끔찍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패닉에 빠진다.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그 결과를 정당화할 ‘원인’을 과거에서부터 소급하여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우주는 묻는다. “어떻게 이 가난뱅이가 왕이 되었는가?” 그리고 스스로 답을 찾는다. “그가 사실은 잃어버린 왕의 핏줄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장 깔끔하고, 모순이 적으며, 에너지 효율이 높은 해결책이다. 그래서 우주는, 그의 과거를 통째로 ‘편집’하고, 그가 처음부터 고귀한 혈통이었던 것처럼 모든 기억과 기록을 지워버린다.

하지만 이 재구성에도 허점은 존재한다. ‘관측의 양자 얽힘(Observational Quantum Entanglement)’. 어떤 존재를 너무나도 강렬하게 사랑하고, 기억하고, ‘관측’하고 있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면, 그 강력한 개인적 현실까지는 완벽하게 덮어쓰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강력한 자석 곁에 놓인 나침반처럼, 세상 전체가 북쪽을 가리키도록 바뀌어도, 그 나침반 하나만큼은 원래의 방향을 기억하며 미친 듯이 떨고 있는 것과 같다.

그렇게, 세상에서 유일하게 현실 조작의 ‘버그 리포트’를 목격한 증인이 태어난다. 모두가 바뀐 진실을 말할 때, 홀로 과거의 진실을 외치는 미치광이.

이 노트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저 ‘기록’할 뿐이다. 한번 기록된 진실은 절대적이다. 이미 새로운 현실이 기록된 이상, 과거의 데이터는 그저 수정되어야 할 ‘오류’에 불과하다. 되돌아갈 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듯 위험하고, 이렇듯 절대적인 우주의 파편이, 어느 날, 덧없는 욕망과 깊은 무지를 가진 한 필멸자의 손에 들어갔다.

지옥의 첫 페이지는, 그렇게, 너무나도 순진한 호기심으로 넘겨지고 말았다.

제1장: 완전한 것에 대한 동경
스즈키 켄지(鈴木健二)는 지루했다. 주말 저녁, 자신의 방 책상 앞에 앉아 펼쳐놓은 숙제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밖은 이미 어둠에 잠겼고, 방 안을 채운 것은 희미한 형광등 소리와 견딜 수 없는 권태뿐이었다. 중학교 2학년. 세상은 온통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고, 켄지의 마음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막연한 도피를 꿈꾸고 있었다.

그의 유일한 비밀은 낡은 문구점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제목 없는 검은색 노트였다. 그 노트는, 적는 대로 현실을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라진 지우개’나 ‘차가운 음료수’ 같은 사소한 장난에 힘을 썼다. 켄지는 겁이 많았고, 세상을 뒤엎을 만한 배짱도 없었다. 노트는 그저 그의 소심한 욕망을 채워주는 편리한 도구일 뿐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산더미 같은 숙제 앞에서, 켄지는 노트 구석에 무의미한 낙서를 시작했다. 특별히 무언가를 그리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 형의 방에서 몰래 훔쳐본 성인 잡지의 한 페이지가 떠올랐다. 흐릿한 기억 속, 여성의 가장 깊고 은밀한 곳.

‘어떻게 생겼더라?’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켄지는 이상한 예술가적 영감에 사로잡혔다. 그는 그냥 낙서를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완벽한 것’을 그리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들킬 리 없는 자신의 방 안. 그는 안심하고, 노트 구석에 조심스럽게 펜을 가져갔다.

그의 펜 끝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지가 태어나고 있었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하듯, 모든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했다. 먼저, 부드러운 곡선으로 도톰하고 탐스러운 두 개의 살점을 그렸다. 한쪽이 다른 쪽을 살짝 덮고 있는 비대칭의 미학까지 완벽하게 계산했다. 펜의 압력을 조절해가며, 연약하고 부드러운 살결의 질감을 표현했다. 그 다음, 그 두 살점 사이에 숨겨진 가느다란 틈새를 그렸다. 그저 선 하나가 아니었다. 꿀을 머금은 듯 촉촉하고, 금방이라도 달콤한 숨을 내뱉을 것처럼 생기 넘치는 선.

마지막은 그 위에 자리한 작은 돌기였다. 켄지는 그 작은 점에 모든 정성을 쏟아부었다. 수줍은 듯 숨어 있으면서도, 존재 자체로 모든 감각을 지배하는 여왕처럼. 그는 펜촉을 세워, 그 끝이 핑크빛으로 예민하게 달아오른 듯한 느낌까지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생명의 약동이 느껴지는 예술 작품이었다. 완벽한 대칭과 비대칭의 조화, 부드러움과 탄력, 수줍음과 대담함이 공존하는, 지상에 존재할 수 없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보지. 켄지는 자신의 걸작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 순간, 사건이 터졌다.

제2장: 지워진 현실
“크윽…!”

온몸의 뼈마디가 녹아내리는 듯한 격통과 함께 세상이 뒤집혔다. 의자에서 굴러떨어지며, 켄지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몸이, 그의 존재의 경계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단단하던 어깨뼈가 안쪽으로 오그라들고, 넓던 골반은 비명을 지르며 좌우로 벌어졌다. 허벅지 근육은 힘을 잃고 물컹한 살로 변해갔고, 키가 줄어드는 끔찍한 감각이 그를 덮쳤다. 변성기로 낮아졌던 목소리는 가늘게 찢어지는 비명으로 변했다. 가장 끔찍한 변화는 아랫도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남성성의 상징이, 뜨거운 젤리처럼 녹아내려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감각. 그 자리에, 그가 방금 전까지 노트에 그리고 있던 바로 그 ‘것’이, 새로운 살과 신경으로 빚어지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켄지는 자신의 방 카펫 위에 쓰러져 있었다. 익숙한 방의 풍경. 하지만 그의 몸은 더 이상 익숙하지 않았다. 가슴에는 낯설고 부드러운 무게감이 느껴졌다. 시선을 내리자 보이는 것은, 헐렁한 티셔츠 아래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탐스러운 가슴이었다.

“뭐… 뭐야…?”

목소리마저 완전히 변해 있었다. 맑고 가느다란, 꿀에 절인 듯 달콤한 소녀의 목소리.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랑이를 더듬었다.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진 그 매끈하고 부드러운 감촉. 절망 속에서 비틀거리며 책상 앞의 작은 거울로 다가갔다.

거울 속에 서 있는 것은… 낯선 소녀였다.

아니, 낯설지만은 않았다. 찰랑이는 흑단 같은 머리카락,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듯한 커다란 눈망울, 오똑하면서도 귀여운 코, 그리고 살짝 벌어져 숨결이 새어 나올 듯한 벚꽃잎 같은 입술.

자신이 창조했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보지에 어울릴 법한, 세계 최고의 미소녀. 그 소녀가, 이제 거울 속에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똑똑.

“케이코, 저녁 먹으렴! 켄이치 오빠도 기다리고 있단다!”

문밖에서 들려온 엄마, 카나에의 목소리. 케이코? 켄이치 오빠?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엄마는 왜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거지? 케이코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야?

“엄마…?”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닌, 맑고 높은 소녀의 목소리였다.

“왜 그러니, 케이코? 속이 안 좋니?”

문밖의 목소리에는 아들 켄지를 향한 걱정이 아닌, 딸 케이코를 향한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노트는 단지 그녀의 몸만 바꾼 것이 아니었다. 세상 전부를, 그녀의 존재 자체를 다시 써 내려간 것이다. 스즈키 켄지라는 소년은,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엄마의 기억 속에서조차.

그 사실이, 몸이 변했던 순간의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공포가 되어 그녀의 온몸을 덮쳤다.

제3장: 새로운 몸, 낯선 감각
그날 밤, 케이코는 자신의 방이라는 익숙하고도 낯선 감옥에 갇혔다. 문밖에서는 가족들의 일상적인 대화 소리와 TV 소리가 들려왔다. 그 평범한 소음이, 지금 그녀에게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공포와 절망 속에서, 끔찍한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방문을 잠갔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마주한 자신의 벗은 몸.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조각처럼 깎아놓은 듯한 쇄골,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그리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풍만하게 솟아오른 가슴과 엉덩이. 모든 곡선이 완벽한 황금 비율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그녀에게 공포였다.

떨리는 손길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을 탐색했다. 말랑하고 따뜻한 가슴을 만지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손가락이 핑크빛으로 달아오른 유두에 스치는 순간,

“힉…!”

허리가 활처럼 휘며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뇌까지 짜릿하게 울리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쾌감. 그녀는 황급히 손을 뗐지만, 이미 늦었다. 유두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더욱 단단하게 솟아올라,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다. 두 다리 사이, 부드러운 음모 아래 자리 잡은, 자신이 직접 그렸던 바로 그 보지. 수치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채, 그녀는 손을 가져갔다.

도톰하고 부드러운 두 개의 살점. 그 사이를 가르자, 촉촉하게 젖어 반짝이는 붉은 내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중심의 작은 돌기, 자신이 그토록 공들여 그렸던 클리토리스. 손가락 끝이 그곳에 닿는 순간, 케이코는 숨을 멈췄다.

“하읏…!”

뇌를 직접 바늘로 찌르는 듯한, 농밀하고도 날카로운 쾌감. 몸 안의 모든 신경이 그 작은 한 점으로 집중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곳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손가락의 움직임에 맞춰, 질척하고 투명한 애액이 꿀처럼 흘러나와 손가락 사이를 적셨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음란한 액체를 만들어내는 광경에 그녀는 수치심과 흥분을 동시에 느꼈다.

“안 돼… 그만해야… 흐읏, 아응…!”

머릿속의 이성은 멈추라고 소리쳤지만, 소녀의 몸은 더 강한 자극을 갈망하며 멋대로 움직였다. 그녀는 책상다리를 붙잡고 허리를 비틀며, 자신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탐닉했다. 몇 번이고 절정의 파도가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모든 것이 끝나고, 그녀는 카펫 위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몸은 완벽한 여자가 되었지만, 정신은 여전히 소년이었다. 이 끔찍한 괴리감. ‘나’는 누구인가. 스즈키 켄지인가, 아니면 스즈키 케이코인가. 그녀가 그토록 완벽하게 그려낸 그 보지는, 그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잔인한 감옥이 되어버렸다.

제4장: 홀로 남겨진 기억
다음 날 아침, 등굣길은 지옥이었다. 케이코는 어쩔 수 없이 여자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어색하게 몸을 감싸는 블라우스와 치마, 허벅지를 스치는 스타킹의 감촉이 견딜 수 없이 수치스러웠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케이코’라고 부르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들의 눈에는 의심이나 의아함이 전혀 없었다. 세상은, 그녀가 처음부터 ‘스즈키 케이코’였다고 믿고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교실. 케이코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익숙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소꿉친구, 이노우에 유미(井上由美)의 모습이 들어왔다. 짧은 단발머리에 활기찬 미소를 가진, 켄지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단 한 사람이었다.

케이코가 떨리는 발걸음으로 자신의 자리로 다가갔다. 의자를 빼서 앉는 소리에, 유미가 책을 보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유미의 눈이 동그렇게 커졌다. 놀라움, 당황스러움, 그리고 낯선 상대를 향한 순수한 경계심. 그녀의 눈에는 그 어떤 반가움이나 익숙함도 없었다.

“저기… 누구세요?”

유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케이코의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야, 유미. 나… 켄지….”

“켄지? 켄지는 아직 안 왔는데.” 유미는 케이코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완벽한 미소녀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는 듯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거기는 내 친구 자리거든. 다른 빈자리에 앉아줄래?”

그 순간, 케이코는 깨달았다. 세상은 모두 바뀌었지만, 유미의 세상만은 그대로라는 것을. 노트의 힘이, 그녀에게만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어쩌면 유일한 희망이 될 수도, 혹은 가장 잔인한 절망이 될 수도 있는 진실.

“아니야, 유미! 정말 나라고! 어제… 어제 이상한 일이…!”

케이코가 울먹이며 필사적으로 설명하려던 순간이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반장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유미를 보았다.

“이노우에상, 무슨 소리야? 스즈키상은 원래 네 옆자리잖아.”

유미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스즈키상? 무슨 소리야, 야마다. 여긴 스즈키 켄지 자리라고.”

야마다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마치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 주변 친구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혹시 ‘스즈키 켄지’라고 알아?”

교실 안의 모든 학생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유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한 남학생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이노우에, 너 어제 드라마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켄지가 누구야? 네 옆자리는 원래부터 우리 반의 아이돌, 케이코쨩이었잖아.”

“마자마자! 전학 온 첫날부터 쭉 옆자리였으면서,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유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다들! 어제까지 나랑 같이 하교했던 스즈키 켄지! 내 소꿉친구! 다들 미쳤어?!”

하지만 그녀의 절규는, 그저 잠 덜 깬 소녀의 이상한 잠꼬대처럼 취급될 뿐이었다. 모두가 그녀를 이상한 아이, 혹은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애처럼 쳐다보았다. 유미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세상 전체가, 그녀가 알고 있던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케이코는, 그 모든 광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저지른 단 한 번의 어리석은 호기심이,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것도 모자라, 가장 소중한 친구마저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고 미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노트가 만들어낸 이 지옥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정교하며,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케이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충격과 공포에 울부짖는 유미를 바라보며, 자신의 새로운 몸 안에서 조용히, 소리 없이 울 뿐이었다.

제5장: 부서진 조각을 맞추다
그날 하루는 유미에게도, 케이코에게도 지옥이었다. 유미는 수업 내내 혼란과 분노에 찬 눈으로 케이코를 쏘아보았다. 세상이 통째로 미쳐버렸다고, 아니면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점심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케이코에게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의심과 경계가 가득한 눈으로 집요하게 관찰했다.

케이코는 그 시선을 고스란히 느끼며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차라리 모두가 자신을 잊어버린 편이 나았을까. 유일하게 자신을 기억하는 친구의 그 차가운 시선은, 그녀의 마지막 남은 정신마저 갉아먹는 것 같았다.

마침내 마지막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케이코는 도망치듯 가방을 쌌다. 이 지옥 같은 공간을 1초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순간, 유미가 벼락같이 그녀의 팔목을 낚아챘다.

“따라와.”

유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는 케이코의 저항을 허락하지 않고, 그녀를 끌고 교실 밖으로 나섰다. 그들이 향한 곳은 학생들이 거의 찾지 않는, 낡은 과학실 뒤편의 좁은 창고였다.

먼지 쌓인 창고 문이 닫히자, 공간에는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 찼다. 유미는 케이코의 팔목을 놓아주며, 그녀를 벽으로 거칠게 밀어붙였다.

“이제 말해. 너, 대체 누구야?” 유미의 눈에는 분노와 함께, 필사적인 감정이 서려 있었다. “내 친구 켄지는 어디 갔어? 네가 켄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유미,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켄지야!”

“닥쳐! 그 기분 나쁜 목소리로 켄지 이름을 들먹이지 마!”

유미는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케이코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두 사람만이 아는 기억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여름 캠프 갔다가… 내가 너 몰래 수박 서리하다가 넘어져서 무릎 깨졌던 거. 그래서 네가 네 손수건으로 묶어줬잖아. 그 손수건, 아직도 내 책상 서랍에 있어. 노란색 바탕에 병아리가 그려진 손수건.”

유미의 눈이 흔들렸다. 그건 분명, 두 사람밖에 모르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우연일 수도 있어. 네가… 켄지한테서 훔쳐 들었을 수도 있지.”

케이코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더 깊은 기억을,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둘만의 비밀을 꺼내놓았다.

“작년 내 생일. 너희 집에서 파티했을 때, 네가 나한테 선물로 준 한정판 게임 CD. 내가 너무 좋아서 너를 꽉 껴안았는데, 그때 네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잖아. ‘이 바보 멍게’라고. 네가 정말 화났을 때나, 아니면… 정말 기쁠 때 나한테만 쓰는 그 별명.”

‘바보 멍게(馬鹿ホヤ)’.

그 단어가 나오는 순간, 유미의 호흡이 멎었다. 그것은 정말로, 정말로 두 사람만의 비밀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때 켄지에게 소리치거나, 혹은 남들이 모르는 선물을 건네며 부끄러움을 감출 때 장난처럼 속삭이던, 세상에서 단 두 사람만 아는 그들만의 언어.

유미의 얼굴에서 분노와 경계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 자리에는 믿을 수 없다는, 거대한 혼란만이 남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케이코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유미의 손가락이 케이코의 눈 밑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녀는 발견했다. 아주 작고 희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작은 흉터. 어릴 적, 켄지가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나뭇가지에 긁혀 생긴,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옅어진 그 흉터.

유미의 마지막 이성이 끊어졌다. 그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녀는 무너지듯 케이코의 앞에 주저앉았다.

“켄…지…?”

떨리는 목소리. 의문과 확신이 뒤섞인 그 한마디.

케이코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에서도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정말로… 너야, 켄지?”

“응… 나야, 유미.”

유미는 흐느끼며 케이코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소꿉친구. 어제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소년. 그 소년이, 이제는 눈앞의 이 기절할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가 되어 있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그녀는 케이코의 다리를 붙잡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케이코 역시, 함께 주저앉아 유미를 부둥켜안았다. 이 미쳐버린 세상 속에서, 자신을 ‘켄지’로 기억해 주는 유일한 사람. 그 존재만으로도, 케이코는 잠시나마 구원받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먼지 쌓인 창고 안,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한 명은 잃어버린 친구를 되찾은 슬픔에, 다른 한 명은 자신을 기억해 주는 유일한 존재를 확인한 안도감에. 그들의 울음소리는, 뒤틀린 현실이 빚어낸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화음이었다.

제6장: 잃어버린 소년을 찾아서
그날 방과 후, 유미는 케이코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켄지였던 시절, 수없이 드나들었던 익숙한 공간. 벽에는 오래된 게임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책장에는 두 사람이 함께 모았던 만화책이 꽂혀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이제 케이코는 그 공간의 이방인이었다.

유미는 책상 서랍에서 낡은 앨범을 꺼냈다. 그리고는 케이코의 옆에 바싹 붙어 앉아,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앨범 속에는 켄지와 유미의 어린 시절이 가득했다. 흙투성이가 되어 웃고 있는 모습,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

“이때 기억나? 네가 내 아이스크림 뺏어 먹어서 엄청 싸웠잖아.”

유미는 사진 속 켄지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빛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넌 항상 그랬어. 멍청하고, 눈치 없고, 제멋대로였지. 그래도…”

유미의 시선이 사진에서, 바로 옆에 앉은 케이코의 얼굴로 옮겨왔다. 그녀는 케이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마치 켄지를 찾으려는 듯, 케이코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래도… 켄지, 네 눈은 그대로네. 집중할 때 이렇게 미간 찌푸리는 버릇도.”

그 순간, 케이코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유미는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 너머로, 이제는 사라져버린 소년, 켄지를 보고 있었다. 유미의 눈동자 속에 비친 것은 아름다운 소녀 스즈키 케이코가 아니라, 닿을 수 없는 첫사랑의 망령이었다.

유미는 앨범의 마지막 장, 작년 축제 때 찍은 사진 앞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유카타를 입은 자신과, 그런 자신을 어색하게 바라보며 서 있는 켄지의 사진이었다.

“나 사실, 이날 너한테 말하려고 했어.”

유미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좋아한다고.”

정적이 흘렀다. 케이코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유미가… 켄지였던 나를… 좋아했다고?

유미는 사진 속 켄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바보 같지. 이 멍청이는 끝까지 눈치도 못 챘는데. 만약… 만약 네가 아직 켄지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한마디가, 케이코의 마지막 남은 세계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죄책감.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이 해일처럼 그녀를 덮쳤다. 자신이 무심코 그린 그림 하나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것도 모자라, 가장 소중한 친구의 애틋한 첫사랑마저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린 것이다.

유미는 아직도, 사라진 소년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사랑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든, 끔찍한 살인자였다.

케이코는 유미의 어깨에 기댄 채, 소리 없이 울었다. 유미는 그런 케이코가 자신을 위로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등을 말없이 토닥여주었다. 하지만 케이코의 눈물은 위로가 아닌, 속죄의 시작이었다.

'미안해, 유미. 미안해….'

이제 케이코는 유미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것을 원하든, 모두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것이 자신이 유미에게 저지른 끔찍한 죄를, 아주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녀의 몸은, 이제 유미의 잃어버린 사랑을 담아내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야만 했다.

제7장: 되돌릴 수 없는 이름
유미의 집에서 돌아온 그날 밤, 케이코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유미가 자신을 좋아했다는 고백. 그 애틋하고 슬픈 진실은, 케이코의 마지막 남은 세계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죄책감.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이 그녀의 온몸을 짓눌렀다.

‘내가… 유미의 첫사랑을 죽였어.’

그녀는 더 이상 이 몸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유미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원래대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녀는 결심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스즈키 켄지로 돌아가겠다고.

자신의 방, 문을 굳게 잠근 케이코는 책상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검은 노트를 꺼냈다. 며칠 만에 다시 마주한 재앙의 근원.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려움보다 더 강한 결의가 그녀의 눈에 서려 있었다.

그녀는 노트의 새로운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펜을 꽉 쥐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그녀는 모든 염원을 담아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스즈키 켄지.

마지막 획을 긋는 순간,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이 뒤틀리는 끔찍한 고통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기이한 일이 눈앞의 노트 위에서 벌어졌다.

그녀가 방금 쓴 ‘스즈키 켄지(鈴木健二)’라는 글자. 그 검은 잉크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잉크가 스스로 번지고, 형태를 바꾸며, 다른 글자로 변해갔다.

켄지(健二) 라는 두 글자가 녹아내리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글자가 새겨졌다.

케이코(恵子).

“뭐… 뭐야…?”

케이코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녀는 황급히 지우개로 자신이 쓴 글자를 박박 지웠다. 그리고 다시, 이전보다 훨씬 더 힘을 주어 눌러썼다.

스즈키 켄지.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녀의 펜 끝이 종이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켄지’라는 이름은 마법처럼 ‘케이코’로 바뀌어버렸다.

“아니야… 아니라고!”

그녀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며 반복했다. 지우고, 다시 쓰고. 쓰고, 다시 지우고. 세 번째, 네 번째… 몇 번을 반복해도, 노트는 완강하게 그녀의 소원을 거부했다. 스즈키 켄지라는 이름은 페이지 위에 단 1초도 머무르지 못하고, 마치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 스즈키 케이코라는 이름으로 고쳐 써졌다.

마침내, 그녀가 너무 세게 눌러쓴 탓에 펜촉이 부러지고, 종이가 찢겨나갔을 때.

케이코는 깨달았다.

이 노트는 그저 현실을 바꾸는 도구가 아니었다. 이 노트는, 현실 그 자체를 ‘기록’하고 ‘정의’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기록 속에서, 스즈키 켄지는 이미 스즈키 케이코라는 존재에 의해 완전히 덮어쓰기 되어,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단 말인가.

“아… 아아….”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 그녀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되돌아갈 길은, 처음부터 없었다.

케이코는 찢어진 노트 페이지 위로 엎드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넋이 나간 채,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창밖은 여전히 고요했고,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이제 영원히, 이 완벽한 미소녀의 몸에 갇혀버렸다. 켄지의 기억을 가진 채, 케이코로 살아가야만 하는, 끝나지 않는 형벌.

그날 밤, 그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제8장: 소녀의 몸으로 피는 꽃
다음 날, 케이코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아니, 갈 수가 없었다. 절망은 그녀의 몸에서 모든 기력을 앗아갔다. 그녀는 그저 방 안에 틀어박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오후가 되자, 초인종이 울렸다. 걱정이 된 유미가 찾아온 것이다. 케이코의 엄마는 딸의 가장 친한 친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유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케이코의 방문을 열었다.

“케이코, 괜찮아? 왜 학교 안 왔어?”

이불 속에서 들려온 것은 억눌린 흐느낌뿐이었다. 유미는 한숨을 쉬며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이불을 부드럽게 걷어냈다. 눈물과 땀으로 엉망이 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말해줘, 케이코.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케이코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유미의 끈질긴 설득과 따뜻한 눈빛에, 그녀는 결국 무너졌다. 그녀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노트의 존재, 돌아가려 했지만 실패했던 일, 그리고 이제 영원히 케이코로 살아야만 한다는 절망적인 진실까지.

이야기를 듣는 내내, 유미는 아무 말 없이 케이코의 손을 잡아줄 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분노나 원망 대신, 깊은 슬픔과 연민이 서려 있었다.

모든 고백이 끝나고, 케이코는 지쳐서 헐떡였다. 그녀는 유미가 자신을 경멸하거나, 혹은 미쳤다고 생각하며 떠나버릴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유미의 대답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바보.”

유미는 케이코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켄지이든, 케이코이든, 그런 건 상관없어. 나는… 너라는 사람을 좋아했던 거니까. 네가 어떤 모습이 되어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선고였다. 케이코의 마지막 남은 방어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유미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서럽게, 엉엉 울었다. 죄책감과 절망, 그리고 자신을 온전히 받아주는 존재에 대한 안도감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유미는 우는 케이코의 등을 말없이 토닥여주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도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잃어버린 소년을 향한 그리움, 그리고 눈앞의 아름다운 소녀를 향한 보호 본능과… 새로운 형태의 애정.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여자아이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이상하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머릿속 이성이 경고했지만, 심장은 이미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유미의 입술이, 케이코의 눈물로 젖은 입술에 조심스럽게 닿았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촉촉한 감촉. 케이코의 울음이 순간 멎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남자였던 시절,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너무나도 부드럽고 섬세한 입맞춤.

바로 그 순간, 케이코의 몸이 그녀의 의지를 배반했다.

“흐읏…!”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교성. 유미의 입술이 닿는 순간,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소용돌이치며 피어올랐고, 허벅지 사이가 저절로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이 몸은, 케이코가 ‘켄지’로서 꿈꿔왔던 이상적인 미소녀의 몸은, 소녀의 첫 키스에 너무나도 정직하게, 그리고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유미는 케이코의 반응을 온몸으로 느꼈다. 품 안에서 가늘게 떨리는 몸, 갑자기 거칠어진 숨결, 그리고 셔츠 너머로 전해져 오는 뜨거운 체온.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이 아름답고 연약한 몸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그리움과 애정, 그리고 새로운 소유욕이 뒤섞인 채, 유미는 케이코를 침대 위로 부드럽게 눕혔다.

“괜찮아, 케이코. 내가… 전부 가르쳐줄게.”

유미의 손가락이 케이코의 교복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씩, 아주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케이코는 저항하지 못했다. 아니, 저항하고 싶지 않았다. 죄책감과 슬픔은 이미 멀리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자신의 몸이 선사하는, 낯설고도 강렬한 쾌락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만이 남아 있었다.

유미는 케이코의 몸 위에, 잃어버린 소년에 대한 사랑을 새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케이코는, 친구의 손길 아래서, 자신이 몰랐던 여자로서의 즐거움을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닫힌 방문 너머, 두 소녀의 비밀스러운 첫 밤은, 그렇게 깊어지고 있었다.

제9장: 채워지지 않는 그릇
그날 이후, 두 소녀의 세계는 서로에게 전부가 되었다. 유미는 매일같이 케이코의 방을 찾아왔고,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나누었다. 케이코의 몸은, 유미의 손길 아래서 나날이 더 민감하고 음란하게 피어났다. 유미의 손가락이 스치기만 해도 허리를 비틀었고, 그녀의 입맞춤 한 번에 몇 번이고 절정의 파도를 맞았다.

케이코는 쾌락에 빠져들었다. 죄책감을 잊기 위해, 자신의 기이한 운명을 외면하기 위해, 그녀는 유미가 주는 쾌락의 바다에 기꺼이 몸을 던졌다. 유미는 헌신적이었다. 그녀는 마치 망가진 보물을 다루듯 케이코의 몸을 소중하게 어루만졌고, 그녀가 어떻게 하면 더 기분 좋아할지, 어떻게 하면 더 격렬하게 울부짖을지 끊임없이 연구했다. 케이코가 쾌락에 젖어 허덕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유미에게는 잃어버린 켄지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케이코는 마음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은 언제나 받는 쪽이었다. 유미의 애무 아래 녹아내리고, 비명을 지르고, 쾌락에 잠식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유미는? 그녀는 언제나 평온했다. 케이코의 반응을 만족스럽게 지켜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녀의 몸은 뜨거워지지 않았고, 그녀의 숨결은 거칠어지지 않았다.

‘나는… 유미를 기쁘게 해주고 있는 걸까?’

켄지였던 시절의 기억이, 남자로서 상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본능이 그녀의 마음을 찔렀다. 나는 그저 일방적으로 쾌락을 탐하는 이기적인 존재가 아닐까. 이 관계는, 나 혼자만의 독백이 아닐까. 그 불안감은 점점 커졌지만, 차마 유미에게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격렬한 정사가 끝난 후였다. 케이코는 유미의 팔에 안겨 숨을 고르고 있었다. 유미는 그런 케이코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겨주며,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좋겠다, 케이코는. 그렇게 쉽게 느끼고. 나도 케이코처럼 잘 느끼고 싶네.”

아무런 악의도 없는, 그저 순수한 부러움이 담긴 한마디. 하지만 그 말은, 케이코의 심장에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역시 그랬구나. 유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구나. 나를 위해, 그저 봉사하고 있었을 뿐이구나.

그날 밤, 유미가 돌아간 뒤 케이코는 깊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켄지의 첫사랑을 죽여버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녀의 몸까지 이기적으로 탐하고 있었다는 죄책감. 그녀는 이 불균형을 바로잡아야만 했다. 그녀는 유미를, 자신처럼 쾌락에 미쳐 날뛰게 만들고 싶었다. 그것만이 이 관계를 완성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케이코는 책상 깊숙한 곳에서 검은 노트를 꺼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다시 한번 노트의 힘에 의지했다. 이번에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직 유미를 위해서.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새로운 페이지에 간절한 소원을 써 내려갔다.

유미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몸.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 케이코는 숨을 멈췄다. 몸이 변하는 고통이나, 방 안을 채우는 신비로운 빛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방 안은 고요했고, 노트는 그저 평범한 검은색 잉크 자국이 새겨진 종이일 뿐이었다. 케이코는 당황해서 노트를 흔들어 보기도 하고, 다시 한번 같은 문장을 덧붙여 보기도 했다. 하지만 노트는 묵묵부답이었다.

‘왜… 왜 안 되는 거지? 힘이 다 한 건가? 아니면… 내 소원이 부족한가?’

온갖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케이코는 애써 그 생각들을 떨쳐냈다. ‘아닐 거야. 뭔가… 내가 모르는 변화가 일어났을 거야. 지금은 느껴지지 않을 뿐이야.’ 그녀는 억지로 자신을 안심시키며, 차갑게 식어가는 몸을 이불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피어난 새로운 불안의 씨앗은, 쉽게 잠들지 않고 밤새도록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제10장: 잘못 배달된 소원
다음 날 학교는 지옥의 다른 이름이었다. 케이코는 밤새 뒤척인 탓에 퀭한 눈으로 유미를 살폈지만, 그녀에게서는 어떤 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 노트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것이다. 케이코의 마음은 절망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유미는 평소와 달랐다. 언제나처럼 케이코의 곁에 앉아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다리를 비비 꼬거나, 얼굴을 붉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쉬는 시간이 되어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케이코의 시선을 피하는 듯했다. 마치 무언가 큰 비밀이라도 생긴 사람처럼.

그 위화감은 방과 후, 극에 달했다.

“저, 케이코… 나 먼저 가볼게! 내일 봐!”

유미는 평소처럼 케이코를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가방을 챙겨 교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 부자연스러운 행동에, 케이코의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울렸다.

“잠깐만, 유미!”

케이코는 다급하게 유미의 팔을 붙잡았다. 유미의 몸이 움찔, 하고 경직되는 것이 느껴졌다. 케이코는 그런 유미를 이끌고, 익숙한 그곳, 낡은 과학실 뒤편의 창고로 향했다.

문이 닫히자마자, 케이코가 유미를 다그쳤다.

“너, 오늘 왜 그래? 무슨 일 있는 거지?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몸이 좀 안 좋아서….”

유미는 시선을 피하며 변명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다리를 배배 꼬며, 무언가 참기 힘든 것을 억누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케이코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유미의 어깨를 붙잡고 외쳤다.

“거짓말하지 마! 똑똑히 말해, 대체 무슨 일이냐고!”

그 외침에, 유미의 마지막 이성이 끊어졌다. 그녀의 얼굴이 절망과 수치심으로 일그러졌다. 그녀는 울먹이며, 거의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고 싶어? 내가 왜 이러는지, 정말로 보고 싶냐고…?”

케이코가 대답하기도 전에, 유미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교복 치마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눈을 질끈 감고, 그것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케이코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하얀색 속옷, 가느다란 허벅지, 그리고…

그 중심에 자리 잡은, 있어서는 안 될, 이질적이고도 흉측한 것.

그것은 어젯밤 케이코의 소원에 대한, 노트의 가장 잔인하고도 완벽한 대답이었다.

유미의 다리 사이에는, 소녀의 몸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거대하고 우람한 남자의 그것이 생겨나 있었다. 살을 찢고 뼈를 녹이며 돋아난 듯, 뿌리 부분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잠들어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용은 웬만한 성인 남자의 것을 아득히 능가했다. 힘줄이 굵게 돋아난 기둥과, 묵직하게 늘어진 두 개의 주머니. 그것은 생명력과 욕망의 상징이자, 모든 것을 꿰뚫고 파괴할 수 있는 무기였다.

노트는 케이코의 몸을 바꾸지 않았다. 대신, 유미에게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몸’을, 가장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선사한 것이다.

“흐윽… 어젯밤부터… 갑자기 이게….”

유미는 수치심에 울부짖으며 주저앉았다. 케이코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이기적인 소원이, 가장 소중한 친구의 몸을, 이토록 끔찍한 괴물로 만들어버렸다는 진실 앞에서.

제11장: 잘못 배달된 아침
그날 아침의 일이었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그녀는 아랫배를 옥죄는 낯선 압박감에 눈을 떴다. 무언가 뜨겁고, 단단하고, 거대한 것이 그녀의 몸을 뚫고 나올 것처럼 팽창하고 있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이불을 걷어찼다.

그리고 보고 말았다.

자신의 파자마 바지를 뚫을 듯이 솟아오른 거대한 텐트. 하늘을 향해 꼿꼿이 발기한 그것은, 그녀의 명치에 닿을 듯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핏기가 돌아 시뻘겋게 달아오른 기둥과, 그 끝에서 맑은 액체를 흘리고 있는 귀두. 그것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녀의 심장 박동에 맞춰 움찔거리고 있었다.

“히이익!”

유미는 공포에 질려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그 소리에, 방문이 벌컥 열리며 엄마가 들어왔다.

“유미! 무슨 일이니? 괜찮… 어머.”

유미의 엄마는 딸의 흉측한 아침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딸, 오늘도 아주 힘이 넘치네. 정말 대단하구나.”

“…네?”

유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앞치마를 두른 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딸의 ‘아침’을 감상하고 있었다.

혼란에 빠진 채로 끌려간 아침 식사 시간. 유미는 식탁 밑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그것 때문에 앉아 있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그때, 엄마가 신문을 읽고 있는 아빠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었다.

“여보, 우리 유미 말이에요. 매일 아침 저렇게 대단한데, 저거 괜찮은 걸까요? 어딘가 불편하지는 않으려나.”

아빠는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익숙하다는 듯 대답했다.

“글쎄, 후타나리의 감각은 나도 잘 모르지만. 남자들은 매일 겪는 일이니까, 쟤도 이제 익숙하지 않겠어?”

후타나리? 익숙해? 유미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동생, 에미가 샐러드를 씹으며 툭, 하고 충고를 던졌다.

“언니, 학교에서 체육복 갈아입을 때 조심해. 남자애들한테 그거 있다는 거 들키면 큰일 날 테니까.”

그 순간, 유미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세상이, 또다시 바뀌어 있었다. 어젯밤을 기점으로, 세상은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후타나리였다’고 기억하게 된 것이다. 그녀의 가족에게 그녀의 자지는, 숨겨야 할 비밀일 뿐, 놀랄 일은 아니었다.

오직 그녀의 기억만이, 어제까지 평범한 소녀였던 자신을 외롭게 증명하고 있었다.

‘설마….’

유미의 머릿속 한구석에서, 끔찍한 의심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실 조작. 케이코. 그녀가 겪었던 일. 그리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그 이상한 노트.

‘설마, 이것도… 케이코의 노트 때문인 거야?’

그 생각에, 유미의 등골을 차가운 전율이 훑고 지나갔다.

제12장: 아련한 밤의 초대
먼지 쌓인 과학실 창고 안, 시간은 멈춘 듯했다. 석양빛이 좁은 창틈으로 스며들어,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유미의 어깨와, 그 앞에 얼어붙은 채 서 있는 케이코의 발끝을 길게 비췄다.

케이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친구의 치마 아래로 언뜻 보였던, 그 흉측하고도 장엄한 광경. 그녀의 뇌리에 낙인처럼 새겨진 그 이미지는, 그녀의 사고를 완전히 마비시켰다. 죄책감, 공포,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바닥에서부터 기어오르는, 지독하고도 음란한 흥분.

‘내가… 내가 유미를 저렇게 만들었어. 나 때문에….’

그 생각과 동시에, 유미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몸이라는, 자신이 썼던 그 소원이 저주처럼 떠올랐다. 노트는 그녀의 몸을 바꾸는 대신, 가장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유미에게 ‘만족시킬 수 있는 몸’을 선사한 것이다.

“흐윽… 흑… 이게… 대체….”

유미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케이코의 의식을 현실로 끌어당겼다. 그녀는 온 힘을 쥐어짜내, 케이코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분노는 없었다. 오직, 모든 것을 체념한 자의 깊고 텅 빈 질문만이 담겨 있었다.

“이것도… 네 노트 때문이지, 케이코?”

케이코는 차마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침묵과, 절망으로 일그러진 표정이 그 어떤 대답보다도 명백한 긍정이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유미의 눈에서 마지막 남은 한 줄기 희망의 빛이 꺼져 내렸다. 그녀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망가져 버린 운명을 끌어안고 아이처럼,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에, 케이코는 마침내 움직일 수 있었다. 그녀는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유미의 등을 감싸 안았다. 작고, 가늘게 떨리는 등. 하지만 케이코의 머릿속은 온통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방금 전 보았던, 유미의 허벅지 사이에 자리 잡은 거대하고 뜨거운 것. 그것이 지금, 바로 눈앞에서, 유미의 울음과 함께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상상.

그 생각만으로도 케이코의 아랫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몸은, 이 배신자 같은 육체는, 친구의 비극 앞에서조차 욕정하고 있었다. 케이코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머릿속의 음란한 상상을 지우고, 오직 유미를 위로하는 것에만 집중하려 애썼다.

“괜찮아, 유미… 괜찮아… 우리가 어떻게든….”

그녀의 목소리는 위로가 되지 못하고 공허하게 흩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유미의 울음이 잦아들고, 창고 밖은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부축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유미의 집을 향해 걸었다. 길가의 가로등 불빛이 두 소녀의 지친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유미의 집 현관문 앞. 열쇠를 꺼내 문을 여는 유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케이코는 차마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럼… 나, 나는 이만 가볼게. 내일… 학교에서….”

케이코가 어색하게 작별 인사를 건네며 돌아서려던 순간이었다.

달칵.

현관문이 열렸다. 어두운 집 안에서,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왔다. 유미는 문고리를 잡은 채, 케이코를 돌아보지 않고 나직이 말했다.

“오늘 밤… 집에 아무도 없어.”

그 목소리는 아련하고, 슬프고,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체념한 듯한 울림을 담고 있었다. 유미는 여전히 등을 보인 채, 케이코의 손목을 부드럽게,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붙잡았다.

그것은, 길고 긴 밤의 시작을 알리는, 구원이자 타락의 초대였다.

제13장: 괴물의 고백
유미의 방은 어두웠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침대 위에 나란히 앉은 두 소녀의 실루엣을 희미하게 비출 뿐이었다. 공기는 무거웠고, 침묵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케이코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긴장, 흥분, 성욕, 공포. 온갖 종류의 감정이 뒤섞여 그녀의 온몸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그녀의 옆에 앉은 유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 작은 손의 온기가, 케이코에게는 유일한 현실감이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먼저 입을 연 것은 유미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텅 빈 방 안을 낮게, 그리고 아련하게 울렸다.

“켄지는 말이야, 단 걸 엄청 좋아했어. 특히 딸기 쇼트케이크. 그런데 꼭 생크림은 남겼지. 느끼하다면서.”

케이코는 숨을 죽인 채 듣고만 있었다. 유미는 마치 꿈을 꾸듯, 켄지와의 사소한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둘이서 처음으로 같이 봤던 영화, 비 오는 날 함께 우산을 쓰고 가다 흠뻑 젖었던 일, 시험 전날 밤새도록 전화로 서로를 응원했던 기억.

그 모든 것은 케이코 자신의 기억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닌, ‘스즈키 켄지’라는 이름의, 이제는 사라져버린 소년의 성유물처럼 느껴졌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케이코는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느꼈다. 유미의 목소리가, 그녀의 체온이,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달콤한 샴푸 향기가, 그녀의 아랫배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이 배신자 같은 몸. 친구의 슬픈 추억담을 들으며 발정하고 있다니. 케이코는 스스로를 경멸하며,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유미의 이야기는 마침내, 어제의 고백으로 이어졌다.

“…이제야 솔직하게 말하는 거지만,” 유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조금은 얄미웠어.”

케이코는 놀라서 유미를 바라보았다.

“네가 너무 예뻐서. 켄지의 흔적을 가진 네가, 내가 꿈에 그리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소녀가 되어서… 그런 너를 좋아하는 내 마음과, 아직도 켄지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이 싸웠거든. 그래서… 조금은 너를 원망했던 것 같아.”

유미는 케이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깊은 슬픔과, 그보다 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케이코. 죄책감 같은 거 가지지 마. 내가 이렇게 된 건, 네 탓이 아니야. 어쩌면… 어쩌면 이건, 내가 켄지를 너무 사랑해서 받은 벌일지도 모르니까.”

그 말에, 케이코의 마지막 이성이 끊어졌다. 유미는 자신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모든 비극의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고 있었다. 케이코는 이 착하고, 어리석고, 사랑스러운 소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유미는 그런 케이코를 부드럽게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안았다. 작고, 따뜻하고, 향기로운 품. 케이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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