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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조교와 호랑이학생 이야기 10

네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5.19 20: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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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에 없는건 포입에서 봐줘 




16꼬옥





- 쏴아아아


따뜻하게 달궈진 물이 샤워기에서 분수처럼 뿜어져나왔다. 

예리한 손발톱을 가진 호랑이뿐만 아니라 수인을 상대로 무방비 상태로 머리를 들이미는 것은 상대를 그만큼 신뢰한다는 뜻과 같다고 했다. 


평범한 인간정도라면 단숨에 목을 분리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완력과 힘을 가진 육식계 최강종에게 그럴 용기가 있는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던 어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천천히 머리칼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은 그 감촉이 왠지 모르게 부드러웠다. 


내 머리위로 세차게 흘러내리려는 물을 태범이 녀석이 자기 손으로 살짝 막아 옆으로 퍼지면서 부드럽게 흘러내릴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이후였다.


"형 물 온도는 어때요?"


"딱 좋네"


"그래요? 그럼..."


태범이는 천천히 내 머리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가만생각해보면 내 머리통만큼이나 커다란 손인데, 미용사처럼 두피 마사지 느낌을 낼 수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무척이나 연약한 물건을 다루는 것처럼, 녀석은 내 머리를 조심히 어루만지면서 쓰다듬었다. 


"샴푸도 해드릴게요"


샴푸를 해준다는 말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데, 손바닥에 샴푸를 얼마나 많이 짜내는 것인지 샴푸통의 펌프질 소리가 수차례나 들렸다. 


"어?"


쌔한 느낌이 들었지만 미처 뭐라 말하기도 전에 태범이의 두툼한 손이 내 정수리를 감싸안았고 그대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샴푸때문인지, 평소 보지 못했던 부피의 거품이 머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이상함을 직감한 태범이가 "어어..."거리는 소리가 머리위에서 들렸다. 


"이상하네? 거품이 왜이리 많이 일어나지?"


평소와는 상이한 현상을 보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도 계속해서 내 머리통을 조물딱 거리는것이, 어딘가가 모자란 호랑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야 태범아."


"네.. 네?"

"샴푸를 몇번이나 짜낸거야... 너무 많이 했잖아."

"평소에 제가 하던것보다는 그래도 적게 했는데.... 한 4~5번정도요?"


그렇다.

이녀석은 인간과 수인의 차이를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 태범이가 샴푸를 짜낸 통은 수인에게 맞춰진 정량이 배출되는 샴푸통이었다.

애초에 온몸이 털로 뒤덮힌 수인이 인간과 같은 양의 샴푸나 바디워시를 쓰는것이 말이 안되는 일이지. 


"너무 많잖아. 난 너희들이랑 달라서 털이 많지 않다고"


거품은 이제 머리와 목을 넘어서서 얼굴과 등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곧이어 입으로 들어오는 거품을 간신히 닦아내면서 얘기했다. 


"아!"


녀석 그제서야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다는 듯이 허둥지둥 샤워기를 들고는 물을 마구 뿌려댔다. 

'쏴아아' 소리와 함께 씻겨내려가는 거품과 향기들. 하지만 워낙 많은 양이었던 터라, 전부 헹궈내는데는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 헹궈졌나 싶다가도 혹시 몰라 한번 비비면 미세하게라도 올라오는 거품들때문에 반복해서 몇번이고 씻어내야만 했다.

태범이는 주눅든 표정으로 귀를 늘어뜨리고, 녀석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옆에서서 샤워기를 잘 받치고 있는 것 뿐이었다. 

가끔가다 내가 미처 닦아내지 못한 거품잔재들을 손으로 '스윽' 닦아주는 정도랄까. 


"후우..."


꽤 시간이 흘러 그래도 개운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태범이를 보니, 이번에는 진짜로 망했다 싶었는지 꼬리며 귀며 감정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위가 추욱 처져있었다. 

마치 사고를 친 뒤에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불호령을 기다리는 멍멍이마냥 말이다.


"야 남태범"


"네... 형."


녀석은 살짝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면서 날 내려보았다.


"근데 내가 씻을 수 있는데 굳이 머리를 감겨주려고 했던 이유가 뭐야?"

"그건..."


잠시 머뭇거리다가 태범이가 입을 열었다.


"저희 호랑이들이 물을 좋아하는건 아시잖아요. 어릴때부터 형제와 같이 가까운 사이에 오해가 생기거나 다툼이 있고나면, 그걸 빨리 털어버리기 위해서라도 함께 씻는거라고 배워서..."


태범이는 머뭇거리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시원한 냉탕에 몸을 담그면 불타올랐던 분노를 잠재울수가 있고, 냉랭해지고 차가워진 마음을 달래려면 따뜻한 온탕에 한동안 앉아있으면 진정되더라구요."


한마디로 순수하게 호족(虎族)들만의 관계회복 방법이란 말이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수인들의 호전적인 성격을 조금이라도 잠재우기 위함인지,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도록 부모님께 가르침을 받은 듯 했다.

훌륭하고 현명한 부모님을 두었구나 태범아. 


"해서... 오늘 아침에 형이 기분이 좀 나빠보이시길래, 어떻게든 좀 풀어드리고 싶어서..."


마지막에는 말끝을 흐리면서 지 덩치의 반정도밖에 안되는 내 눈치를 본다. 

원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동기와 과정이 날 위함이었으니 귀엽게 보고 충분히 웃으면서 넘어갈 일이었다. 


"아니야. 그리 기분이 나쁘건 아니었어. 무의식중에 일어난 사고였으니까? 다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는 말에 화색이 도는 녀석의 얼굴. 그리고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다만이라는 단서를 달았더니, 커다란 몸을 움찔거린다. 

눈을 크게 뜨고 내입에서 나올 다음 단어를 숨죽이고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다만...?"


"실수한 대가는 치러야겠지. 오늘 하루 경기장 투어는 네가 책임지는 걸로한다. 불만없지?"


"그, 그정도라면야 아무것도 아니죠!"


태범이는 제 덩치는 생각도 하지 않고 기쁨에 겨워 하는 모습이었다. 휘둥그레진 눈동자와 환하게 웃는 얼굴 사이로 드러나는 섬뜩하리만치 길고 커다란 송곳니.

혼자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응어리라도 풀어내는데 성공한 표정이었다.

당장이라도 내 손을 잡고 흔들고 싶어하는게 눈에 보였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이내 자신이 너무 들떠있다는 생각에 헛기침을 두어번 하더니 침착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큼... 일단 형 마저 씻으세요. 전 방정리좀 할게요."


태범이는 꼬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욕실을 먼저 빠져나갔고, 난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씻을 수 있게 되었다.

샤워기를 틀었는데 물소리를 뚫고 들릴정도로 "오예~~!" 하는 커다란 환호성과 같은 소리가 방에 울린건 논외.


-------


이왕 이리 된 것, 우리는 호텔에서 묵는 기간을 조금 더 연장하기로 했다. 

시간에 쫒겨 집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여유있게 경기장도 둘러보고 시합도 관람하는게 좋을 거라는 태범이의 강력한 주장아래서 진행됐다. 


평소보다 신속하게 씻고 나온 태범이는 내가 미처 말릴새도 없이 호텔 숙박을 연장시켰고, 하루 가이드라는 임무에 충실할 예정인지 경기장 인근 괜찮은 맛집들 리스트까지 어느새 확보 하고 있었다. 

호랑이나 사자같은 맹수들은 평상시에는 느긋하지만, 사냥할때는 매우 민첩하다던데 그런 성미가 여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보였다. 


"형 어때요? 맛있지 않아요?"

"응 맛있네. 이거 튀김가루가 아주 바삭하고 안에도 잘 익었어."


태범이 손에 이끌려 간 돈까스집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에 위치해있었는데, 숨겨진 맛집답게 가게안은 손님으로 가득 차있었다. 


"이런 숨겨진 곳은 어떻게 알았어?"

"그건 제 비밀이라 지금은 알려드릴수가 없어요. 음... 나중에 때가 되면? 그때 알려드릴게요"

"때가 되면?"

"네. 언젠가는 적절한 시기가 올거라고 생각해요"


태범이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히죽거리고 있었다.

가게 안은 인간뿐만 아니라 드물게 수인들도 자리를 잡고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태범이같은 맹수계 수인은 잘 찾아보기 힘든 편이었다. 


수인이란 종족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있지만, 특히나 호랑이는 더더욱이 눈을 씻고 찾기 어려운 종족이기에.

남들보다 배는 많은 양을 어느새 해치운 뒤에, 태범이는 핸드폰으로 대회 경기일정을 살펴보고 있었다. 


"오늘 차콜 녀석의 첫 경기는 2시부터네요. 조금 이르긴한데 체육관 주변이나 한번 둘러볼까요?"

"차콜? 그게 그 검은 늑대 친구 이름이야?"

"네. 맞아요. 차콜. 검은 숯검댕이 같이 칠흑털을 가졌다고 해서 저희 동기들은 차콜이라고 불러요. 물론 본명이 따로 있긴 하지만요"


가만생각해보니 매우 짙은 흑색의 털을 가졌었지. 

예리하게 빛나는 안광만이 그에게서 가장 밝은 부분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육식수계 최강은 호랑이지만, 간혹 늑대 종에게서도 그들에게 필적하는 힘을 가진 개체들이 종종 나타난다고는 들었다. 

그들또한 '펜리르'와 같은 전설적인 조상을 뿌리로 두고 있는 종족중 하나이기에, 그 힘이 어느 세대에서나 발현되는 것이 극히 놀라운 일은 아닐터였다. 

어제밤 티비로 보았던 차콜의 모습은 매우 강인한 전사와도 같은, 무척이나 진중한 모습이었으니까. 


"회랑이랑은 많이 다르네"


늑대수인또한 많이 본 적이 없으니, 비교대상이라고는 당장 생각나는게 회랑이밖에 없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큭큭큭큭. 차콜녀석이랑 회랑이를 비교하면 안되죠"


귀가 밝은 녀석답게 내 혼잣말을 들었던건지 태범이는 껄껄거리면서 웃고 있었다. 


"회랑이도 나름 다부진편이잖아. 물론 태범이 네가 옆에 있으니까 약해보이는거지."


"맞아요. 회랑이도 일반 수인치고는 체격조건이 좋은 편이죠. 다만 인간들도 마찬가지로 운동선수랑 일반인을 비교하는건 약간 어폐가 있다고 해야할까..."


회랑이는 지난번 농활때도 그랬지만, 태범이랑 친한 친구로 대뜸 녀석에게 팔씨름을 걸기도 하더란다. 

물론 백전백패로 태범이를 이길리가 없지만, 어디 나가서 맞고다닐 녀석은 아닐터였다. 


"태범이 너는 차콜이랑 여러번 겨뤄봤을거 아니야? 누가 이겼어?"


미처 나중을 생각하지 못하고 무심코 던진 이 한마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사람은 진중해야 함을 여기서 경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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