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거 아님)

프리파라의 세계는 아주 밝은 곳이지

모두가 재능이 있고, 꿈도 있고, 노력하고...

너무 밝고 매끄러워서 도리어 섬뜩하게 느껴져

세상은 완전한 질서도 아니고, 완전한 혼돈도 아니고, 완전한 선 혹은 악도 아니고 그 모든 것이 적절히 섞인 중도적인 혼돈, 질서 잡힌 혼돈의 장소처럼 보여.

그렇기에 악이나 혼돈에 집착하는 게 비정상적인 것처럼, 지나친 질서-선의 추구는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이야.

아마 가장 정상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방식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그 경계에서 위태로운 삶을 사는 걸지도 모르지.

지나친 정상성은 광기의 징후 중 하나지.

사람들은 정신병이라고 하면 비합리성, 비일관성, 불안정성 같은 것을 떠올리지만 편집증 환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세계관을 일관적으로 유지한다고 해.

대표적인 사례가 괴델이나 칸토어처럼 말년에 정신병에 시달린 수리논리학자들이겠지.

영화 배트맨: 다크나이트에 등장했던 조커는 자신을 혼돈의 에이전트라고 칭하지만, 사실 내가 보기에 조커는 질서있는 악에 가까운 것 같아.

조커의 행동의 목적은 고담을 악의 구렁텅이에 넣음으로써 배트맨에게 이 세상이 광기와 악으로 가득한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에 있잖아?

그런데 특이한 건 그 목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하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취하는 책략들이 하나 같이 체계적이고 꽤나 합리적으로 보인다는 거야.

그런 점에서 내가 보기에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혼돈의 상징이 아니라, 차라리 질서-악이야. 악은 악이지만, 합리적인 악인 거지.

그리고 어쩌면 이런 미친 세상에서는 광인이야말로 실은 합리적 인간일지도 몰라

너무 이성적이기에 세상의 광적인 본질을 인식하고는 버티지를 못 한 거지

왓치맨의 히어로 코미디언이 세계의 부조리를 체험하고는 결국 몰락하고 만 것처럼.

프리파라의 대표적 미친년인 아지미의 존재의의는 거기에 있는 것 같아

아지미... 넌 대체 무얼 본 거야? 프리파라 세계의 두려운 진실을, 비현실적일 정도로 질서있고 낙관적인 세계의 부조리를 깨달은 걸까?
아무리 유아용 애니메이션이라지만 너무 밝고 희망으로 충만해서 기이하게 느껴지는 세계... 마치 디즈니랜드처럼, 현실이 아름답고 반짝일 수 있다고 속이는 세계.

조증이나 다행증을 떠올리게 만드는 아지미의 도가 지나친 활발함, 적극성, 거침 없는 행동은 부조리를 보여주기 위한 반어적인 행동일지도 몰라.

예컨대 '너희들은 내 행동이 지나치게 밝고 적극적이라고 느끼겠지. 하지만 봐, 이 세상 자체가 이미 그러한 걸?'이라고 말하기 위한 행동일지도.

마치 세상이 미쳤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악을 선택하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그렇다면 우린 이렇게 물어야 할 거야.
-아지미가 목격한 세계의 비밀, 아지미를 광기로 몰고간 프리파라의 심연은 대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