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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셔 헤서웨이 대 바겐세일중 ㄷㄷㄷ
풀매수 갈긴다 ㄷㄷㄷ- 버크셔 A클 99% 할인 8억 6천만원 -> 25만원행 버핏옹 심장마비 오겄노- 버크셔 << 이새끼 현재 체급을 알아보자 (feat. 한국 회사)2.64억달러 회사 버크셔(구멍가게)대충 3600억원이다비슷한 체급을 알아보자락앤락 (3700억)사조대림 (4000억)광동제약 (3500억)하림 (3500억)개 퇴 물 치 매 푸 씨 노 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산유국(진) 의 기업을 다시는 무시하지 마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버크셔 체결 됐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뉴욕거래소는 3일(현지시간) 오전 10시 11분(ET) 업데이트에서 일부 주식에 과도한 변동성이 나타나 주식거래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주식 거래의 메커니즘인 상한 및 하한 대역과 관련된 기술적 문제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버크셔A 주식은 99% 이상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고, 배릭 골드(Barrick Gold)의 거래도 중단됐다. 뉴스케일 파워도 다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거래가 중단된 이날 버크셔A 주식은 이날 4000건 미만의 거래가 이뤄졌다. 버크셔 B 주식은 이날 1% 미만 하락세를 이어갔다. 버크셔A 주가는 전 거래일까지 주당 63만 달러 이상으로 월스트리트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워렌 버핏은 장기적 안목을 갖고 투자를 하는 주주들을 위해 주식을 액면 분할하지 않고 있다. 버크셔 주주들은 자신의 주식을 저축 계좌로 사용하고 있다.버크셔는 1996년에 버핏의 성과를 일부나마 원하는 소규모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A 주식의 30분의 1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클래스B 주식을 발행했다. 팩트셋(FactSet)에 따르면 버핏은 버크셔의 최대주주로 A클래스 주식의 38%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작성자 : L갤러고정닉
모주의 시계 칼럼 #8 - 시계 문맥 읽기. 스위스는 왜 시계 강국이?
1. 서문오늘은 시계 산업, 역사의 전체적인 “문맥” 을 읽어 보려고 해. 시계를 소비하면서 다들 스위스, 독일, 일본 등에서 시계 산업이 흥했다는걸 알고, 각각의 나라마다 다른 시계의 “기풍” 혹은 특징들이 있는걸 느꼈지만, 왜 그런지는 잘 생각을 안해본거 같아서. 왜 스위스에서 시계 산업이 발전했을까? 일본은 왜? 독일 시계는 왜 그렇지? 영국은 왜 산업혁명의 시발점인데 왜 시계 산업은 흥하지 않았지? 등등 궁금증을 풀어보자! (주의 사항: 이건 절대적인 사실이 아니라 글쓴이의 뇌피셜과 취미를 이것저것을 엮은 것이다)2. 스위스 시계 산업의 태동, 종교 혁명스위스 시계 산업의 문맥을 읽어보려면 알아야 할건 두가지, 스위스는 전란이 많은 유럽에서 중립국이 였다는 것과, 스위스, 특히 제네바가 가지는 지정학적 요소들이야.다른 많은 발명품 같이 처음 시계의 역사는 역시 당시 강대국들이 였던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등 이 주도 했어. 하지만 16세기,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빠르게 바껴가. 특히 가톨릭이 주류였던 프랑스에서는 개신교들은 많은 탄압을 받지. 결국 탄압과 종교전쟁을 피해 당시 중립국이자 개신교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던 스위스, 특히 제네바로 많은 프랑스 개신교 인들이 유입이 되.(제네바 위치)스위스 지도를 보면 알수 있지만, 제네바는 프랑스 내부로 뾰족이 튀어나와 있는 형태로 프랑스 개신교들이 잘 넘어갈수 있는 위치에 있지. 당시 기득권으로 대표되는 가톨릭과, 당시 비 기득권 이였던 개신교의 대비로 인해 스위스로 넘어간 개신교 인들중 기술자들, 그중 워치메이커, 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지.이때 프랑스는 시계 관련 인재들을 많이 잃게 되고, 거기의 반사 이익으로 스위스는 양질을 인사들을 얻게 되지. 또, 마틴 루터킹을 필두로 종교 개혁의 원산지인 독일은 그 기술자들을 잘 보존했다고 할수 있지.(글라슈테 위치)독일의 종교 개혁은 북부 기반으로 동북쪽으로 갈수록 개신교가 강하고 남서쪽으로 갈수록 가톨릭이 강해. 흥미로운 점은 나중에 독일 시계 산업의 마지막 보루인 글라슈테도 개신교가 강한 동북부에 있다는 거지. (기술자들은 많았지만, 후 공산화된 동독지역은 종교색이 많이 옅어졌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시발점이지만 나라 전체로는 가톨릭이 개신교와 비슷하거나 약간 우세한 판국이다)스위스 시계 산업의 종교혁명이라는 문맥은 여기서 끝이 아니야. 그건 바로 또다른 종교 개혁자 장 칼뱅 때문이지.(장 칼뱅)장 칼뱅은 프랑스 북부, 즉 독일 국경지대에서 태어났어. 공무원 아버지를 둔 장 칼뱅은 신학을 공부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법학을 공부하게 되지. 아버지의 영향과 법학도생이라는 특성때문인지 당시 보수적인 가톨릭 보다 인문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아. 독일 국경근처라는 지리적 특성과 개인의 성향으로, 독일 루터의 복음주의와 종교개혁에 칼뱅 또한 영향을 받지.아까 프랑스의 개신교인들은 박해를 받고 스위스에 많이 정착했다고 했지? 장 칼뱅 또한 마찬가지야. 공교롭게도 장 칼뱅은 스위스 제네바에 정착하게 되고, 칼뱅 주의 (개혁주의) 개신교가 제네바에 뿌리를 뻗게되지.여기서 개혁주의 라 하면 “개혁” 이라는 단어 때문에 왠지 더 개방적이고 세속적 일거 같은 느낌이 들잖아? 하지만 여기서 개혁이란 종교적 개혁, 구체제였던 가톨릭을 개혁하는거지 가톨릭과 비교해서 개방적이거나 세속적이지 않았어. 오히려 모두가 죄인이다 라는 사상과, 엄격하고, 검소한 신앙생활을 요구하는 신정정치를 이어갔어.그의 일환으로 칼뱅이 요구한건 “보석 (장신구)” 를 착용하지 말라 였어. 이게 스위스 시계 산업에 아주 중요한 사건이였어. 시계 장인들과 함께 많은 세공사들, 보석상, 기술자들이 스위스 제네바로 넘어갔지만 보석을 만들수 없으니 그 기술자들이 만들수 있었던건 무었이였을까? 바로 “시계” 였어.프랑스의 뛰어난 세공기술, 특히 보석이나 금, 은 을 다루는 기술들은 고스란히 시계 산업에 스며들지.하지만 이때만 해도 스위스가 수준급 시계로 이름을 알렸다~ 정도의 수준 이지 지금처럼 독보적인 위치는 아니였어. 여전히 독일, 영국 이 시장을 이끌었고, 역시 당시 세계 최고 강대국이자 최대 산업국인 영국이 주로를 했지. 또한 떠오르는 신흥국인 미국도 늘어나는 철도망을 보조하기 위해 정확도를 요구하는 시계산업이 만들어 지고 있었지.3. 스위스의 인재들, 지리적 특색 모든 산업이 그렇듯 한번쯤 우연인지 필연인지 수많은 인재들이 동시대에 나타나서 산업을 바꾸는 때가 있어. 스위스도 그랬지. 그 출발은 우리에게 덜 알려진 Daniel Jeanrichard 부터 시작되. 자동차 산업에 헨리 포드가 있다면 시계 산업에는 다니엘 이 있다고 봐도 되.(Daniel Jeanrichard)당시 많은 제조업이 그랬듯 시계 산업도 길드를 바탕으로 도제제도를 통해서 굴러가고 있었지. 길드가 소속된 장인들을 컨트롤하고, 각 장인들은 소수의 도제를 키우며 조금씩 기술을 전달하고, 기술유출을 우려해서 확장도 소극적이였지. 또한 가격 하락등을 우려로 시계를 조금씩 만든다던가, 혹은 신기술 (기계식 도구) 도입을 꺼려해서 제작수도 적었지.이 폐쇄적인 길드 중심의 산업에 불만을 느낀 다니엘은 분업화, 외주/하청 (지금은 안좋게 들릴수 있지만 당시에는 길드에서 독점되는 생산을 다른 기술자들한태 특정 부품들을 외주를 준거지), 신기술 도입 등으로 훨씬 더 많은, 정형화된 높은 품질의 시계를 생산할수 있게되지.이 시점부터 스위스 시계 생산, 수출은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어.그 때문인지 수많은 인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Abraham-Louis Perrelet 가 오토매틱 시계를 발명하고, 파테필릭의 창업자 Adrien Philippe 도 이 시대 사람이고. 브레게 또한 곧 나타나서 투르비용 등 많은 발명을 하지.또한 앞서 말한 지리적 이점이 또 스위스를 도왔어. 프랑스의 Jean-Antoine Lépine 이 현대에 익숙한 납작한 무브먼트를 발명했지.(장의 무브먼트)이 무브먼트는 시계를 더욱더 얇게 만들기를 가능하게 만들어 줬어. 그런데 왜 프랑스가 아닌 스위스가 이 기술의 혜택을 받게 되었을까? 그런 바로 프랑스는 아직 대량생산 체계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거야. 앞서 말한 다니엘은 이미 스위스 시계 시장에 분업, 대량 생산 시스템을 정착 시켜놓았고, 더 얇아진 장의 무브가 이식된 스위스 시계 산업은 더 얇고, 혁신적인 시계를 싼 값에 대량생산 할수 있었던거지.이때부터 영국과 다른 나라들의 시계 장인들은 스위스 시계와 경쟁속에서 뒤쳐지지 시작해.앞서 말한 다니엘의 외주 방식은 établissage 스위스 만의 특이한 생산 체계로 이어져. 프랑스나 영국 같은 나라는 파리, 런던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모든 산업이 집중되어 있었다면 특이한 연방 체제 이던 스위스는 각 주, 도시 마다 시계 공방, 산업, 등등 이 골고루 퍼져있었어.(영화 Unrueh 중 한 장면. 무정부 주의자와 스위스 시계공들의 이야기.)장인들과 도제들이 한 공장에서 시계의 모든것을 만드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스위스는 établissage 외주 시스템을 통해 도시, 마을, 지방마다의 시계 장인들은 특정 부품을 빠르고 더 전문성 있게 공금했고, 시계 제작사들은 그 부품들을 사드려 조립 하는 방식으로 진화했지.이 방식이 그 조그만 스위스 안에 지금까지도 지속되어온 수많은 시계 부품 회사들이 생기게 했어.여기서 오는 생산성과, 가격 경쟁력, 품질의 인상은 다른 나라들이 경쟁하기 더 어렵게 만들었어. 1800년도에는 스위스, 영국 양 국가 모두가 약 20,000 개의 시계를 생산했다고 하는데, 1850년에는 영국은 20,000 개, 스위스는 2,200,000 개의 시계를 생산했다고 해.4. 자동화와 미국의 영향지금도 저가 대량생산품이 그렇듯, 당시 스위스 시계도 싸지만 품질은 떨어지는 이미지였어. 또, 길드와 도제 방식을 스위스식 분업, établissage, 미국에서 더 세련되고 발전된 대량생산 공정이 가격과 품질로 스위스 시계를 위협하기 시작했어.(당시 미국의 대표 시계 회사 Waltham)하지만 역시 생산력이 생겨도 워치 메이킹의 노하우 는 없던 미국은 스위스 보다 한단계 아래로 평가 받고 있었다. 그러나 1868년, 미국에서 Florentine A. Jones 가 스위스로 건너가 미국의 선진 생산 공법, 스위스의 워치메이킹 노하우와 인력을 사용해 회사를 새우니 그것이 International Watch Company, IWC 다. (왜 스위스 시계 회사인 IWC 가 영어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이 된다)IWC 의 시작으로 établissage 에서 멀어지고 선진 생산 공법을 스위스 시계 회사들도 도입하기 시작한다. 그 후, 시계 산업도 기계를 이용한 자동화 를 시작한다.여러인물들이 기계를 이용한 자동화를 시작하려 했지만 브레게의 제자인 Ingold 는 특히 쥬얼을 놓을 자리가 있는 플레이트를 생산 하는 기계, 등 많은 시계 부품을 만드는 기계를 개발했고, 자신의 자동화 공정을 도입하려 산업대국인 영국으로 건너가지만 역시 영국 시계 산업의 자동화 거부로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게 된다. 그후 다시 스위스로 돌아온 그는 스위스 산업의 자동화에 큰 이바지를 한다. 또다시 영국의 기득권이 스위스 시계 산업을 도운것이다.(Ingold 의 설비중 하나)5. 중립국스위스 시계 산업의 상징이라 할수 있는 롤렉스도 원래는 영국의 시계 회사였다. 스위스의 Aeglar (현재는 롤렉스의 자회사) 와 협업하여 시작한 영국 브랜드인 롤렉스는 1919년, 스위스로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세계 1차세계 대전 이후, 영국은 사치품, 시계 등에 큰 수입, 수출 관세를 매겼고, 거기서 좀더 자유로운 스위스로 옮기게 된것이다. 왜 롤렉스 시계를 차고 수영을 한 수영선수가 영국인이였는지 어느정도 설명이 된다.(영국 의회 컨트리 클럽에 설치된 롤렉스 시계)중립국이라는 사실은 스위스 시계 가 일등으로 올라가는데 마침표를 찍었다 할수 있다. 이미 기술, 가격, 품질에서 앞서가던 스위스 시계 산업은 두번의 세계대전으로 많은 다른 유럽 국가들의 전쟁을 수행할때 양쪽 모두에게 시계를 수출 할수 있었던 것이다.(더티 다즌)더티 다즌 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군용시계 를 제작한 회사 대부분이 스위스 시계 회사이며, 독일의 플리거를 만든 회사중 IWC 도 포함된다. 이렇게 중립국이라는 특징 덕분에 스위스는 세계적인 시계 수출국이 된다.(1940년도 IWC의 플리거)6. 마치며스위스 시계 산업이 워낙 주류고 역사가 기니 길어져서 다른 얘기를 못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독일, 일본, 이탈리아 의 "문맥" 도 얘기해보도록 하겠음. 좋은시계 차고 좋은하루 보내!
작성자 : 모주에서부곡하와이한잔고정닉
싱글벙글 사고촌 - 비행기편
1. 날개는 장식이스라엘의 네게브 상공에서 일어난 F-15와 A-4가 공중추돌한 사건이 있었다.F-15 2대와 A-4 4대가 네게브 사막의 나할 친 상공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훈련 중 F-15 957번기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F-15와 A-4가 공중추돌해 A-4 공격기가 완파되고 F-15도 치명상을 입은 것.A-4 조종사가 비상탈출했고, F-15도 탈출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해야했던 상황이었다.날개가 완전히 잘려나가면서 연료가 기화, 흰색 구름을 만들어 피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든 것과 함께 갑작스럽게 날개가 사라지면서 기체 전부가 롤링되면서 F-15에 타고있던 조종사와 무장관제사는 혼란에 빠졌고 지상관제소에서는 전투기 날개가 없어진 것을 보고 비상탈출을 명령했다.그러나 조종사였던 Zivi Nedivi 이양반은 계급빨로 명령을 씹고 에프터버너를 켜서 출력빨로 기체를 강제로 안정화시킨 뒤에, 260노트, 약 480km/h의 속도로 내리꽂듯 착륙했다.너무 빠르게 착륙한 나머지 활주로 끝에 설치된 저지용 베리어 (탑건 2 후반부에 f-14가 줄 그물 같은거에 걸려서 착륙했는데 그것이다) 6미터 앞까지 미끌어진 뒤에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전투기에서 탈출하고 나서야 조종사와 무장관제사는 자기들이 타고있는 전투기가 어떤 꼴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날개 한짝이 완전히 사라져있었고, 심지어 착륙하면서 꼬리날개까지 하나 해먹은걸 보고 조종사는 "이럴줄 알았으면 탈출하는거였는데." 라는 짧은 소감을 남긴게 유우머.참고로 957호기는 이후 수리되어 현역으로 복귀함.2. 폭격기한테 요격당한 폭격기2차 세계대전때, 폭격기들은 "박스" 라는 대열을 이루어 폭격 임무를 수행했다.폭격기들에도 방어용 기관총이나 기관포가 달려있었지만 속력이 더 빠른 전투기들은 순식간에 다가와서 폭격기를 날려버릴 수 있었기에, 마치 야생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맹수들이 함부로 사냥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였다.그러나 이 박스 대형으로 인해 이루어진 비극이 있었으니B-17 Miss Donna Mae II 가 그 주인공.B-17 Trudy는 독일 베를린에서 폭격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1000파운드 항공폭탄을 끊임없이 떨어뜨리고 있었는데그중 폭탄 하나가 바로 밑에 있었던 B-17 Miss Donna Mae II의 좌측 꼬리날개를 부숴버리는 대형사고를 저지르고 만다.사고기는 날개를 잃은 충격으로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고 13,000 피트, 약 3.96km 상공 위에서 추락했다.추락 중 2개의 낙하산이 추락중 펼쳐진것이 확인되었으나 결론적으로 승무원 11명 전원 사망하는 비극으로 끝난다.3. 전차가 추락시킨 비행기2차 세계대전, 독소전쟁 당시 오토 카리우스라고 하는 독일군 전차 에이스가 있었다.전쟁 초반에는 독일군이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고 약체화된 소련군을 상대로 승승장구했으나,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며 대량의 물자를 소련에게 전달해주었고 소련 역시 독일군의 기습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 반격을 가하기 시작하며 독일군은 위기에 처하기 시작했다.아닐까 다를까 독일군은 연합국 공국의 폭격에 시달리기 시작하였고 독일 기갑군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선의 지나친 넓이와 부족한 물자로 인해 독일 기갑군은 소련 공군이 폭격을 하러 올때마다 전차에 기어들어가서 해치를 닫고 폭격이 끝나기를 기다려야하는 신세가 되었다.어느날 오토 카리우스는 소련 공격기가 항상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항로로 비행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자기가 지휘하던 전차포 포수, 크레이머와 결탁해서 소련 공격기의 항로에 매복을 실시했다.소련 공격기가 나타났을 때 두사람은 전차포로 사격을 실시했고 첫발은 빗나갔지만 두번째로 발사한 탄이 공격기의 날개에 맞으며 추락, 전차 에이스는 자기 킬마크에 비행기를 추가시킬 수 있었다.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약국을 세우고 Tiger Apotheke 라고 이름지었으며 천수를 누리다가 2015년 별세한다.4. 아이스크림2차 세계대전... 영국은 배급제를 실시하고 일본은 사람을 잡아먹었으며 독일은 미군 수송기가 떨어뜨린 물자 집어 써먹던 시기.전세계가 전쟁의 여파로 인해 쫄쫄 굶고 있었지만 단 하나, 미국은 예외였다.다른 나라들이 스팸 덕분에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고 찬양하던 시기에 미군은 "제발 물리니까 스팸만 보내지 말아주세요" 라는 입짧은 투정을 하던 시기.남들은 어떻게하면 군과 민간인들에게 식량을 안정적으로 보급할 수 있을까를 고밍하던 중에 미국은 "어떻게하면 콜라랑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시기였다.특히 무더운 태평양전선에서 작전중이던 미 해군과 해병대, 해군항공대는 그 무더위로 인해 이러한 수요가 더더욱 엄청났다.거기에 더해 일반명령 99호로 인해 해군 함정과 기지에서 음주가 금지되면서 음주에 대한 욕망이 아이스크림으로 넘어간 영향도 있고...오죽하면 '아이스크림 바지선'이라는 아이스크림 제작함정까지 3대 만들어서 전쟁 내내 끌고다녔을까.동시에 저지랄을 했는데도 아이스크림 생산량이 딸려서 아이스크림 때문에 여러가지 사건사고들도 많이 일어났다.예를들어 렉시턴급 항공모함 렉시턴함이 어뢰와 폭격를 맞고 침몰하고 있었는데 냉동고에 아이스크림이 남아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수병들이 냉동고를 부수고 아이스크림을 노획해서 구조를 기다리며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었다는 이야기나,수병들이 아이스크림 좀 빨려고 길게 줄을 서고 있었는데 왠 초급장교 하나가 새치기를 하자 수병들이랑 같이 줄서고 있던 월리엄 홀시 남태평양 전역 사령관이 그 초급장교에게 욕설을 퍼부었던 일화 등등...배 내에서 자체적으로 아이스크림을 생산할 수 있덨던 대형함정들도 이렇게 아이스크림 못먹어서 아우성인데, 해병대나 항공대는 더더욱 아이스크림 부족에 시달려야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태평양의 펠렐리우 섬에 주둔중이었던 미 해병대 소속의 VMF-122 전투비행대도 이 "아이스크림 부족" 에서 자유롭지 않았다.짐지어 펠렐리우 섬은 일본군 점령지 코앞에 있었는데다 일본군 비행장과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서 항상 긴장감이 넘치는 곳이었다.태평양 한가운데의 무더위와 습기에 언제든 전투가 일어날 수 있다는 무거운 분위기, 더위때문에 신선식품도 부족하고 술도 없고 마실것도 없고 군생활 하기에는 아주 최악의 환경에서 비행대장이었던 헌터 라인버그 사령관은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알다시피, 하늘 위로 올라가면 엄청나게 추워진다. 그리고 그가 지휘하는 곳은 비행대였고. 비행대에는 전투기들이 아주 차고 넘친다.라인버그 사령관은 항공정비사를 몰래 불러 외부연료탱크를 잘라내고 거기에 와이어를 달아 원래 총알을 담아야할 방수 용기를 달 수 있게 개조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 통에는 코코아 가루와 연유 통조림이 들어갔고.안타깝게도 일본군을 자극할 수 있기에 그의 비행단에는 일본군 항공대가 쳐들어오지 않는한 비행이 금지되었으나 사령관은 "산소 시스템 테스트" 라는 이상한 이유를 대며 단 한대의 콜세어를 타고 비행할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첫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하도 흔들려서 부드럽고 차갑긴 했지만, 결국 얼지는 않았으니까.작전에 참가한 인원들의 강평이 이어졌고, "비행기 엔진과 너무 가까운 곳에 매달아서 엔진열 때문에 임무가 실패했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사령관은 이번에는 "터보슈퍼차저 테스트" 라는 명분은 내세웠고 이번에는 100명분짜리 혼합물 탱크들이 양 날개의 유지관리용 패널 끝에 달렸다.다시 한번 콜세어가 출격했고... 이번에는 얼긴 했는데 부서지다 못해 아예 파편쪼가리가 되어있었다.남은 것들은 스테프들이 맛있게 처리했으나 더 나은 결과물이 필요했고, 세번째 비행이 입안되었다.이번에는 아이스크림 통 안에 회전날개를 달았고, 전투기 엔진의 진동으로 날개가 돌아가는 식으로 통안의 혼합물을 휘젓게 개량했다.다시 한번 고고도 비행이 이루어졌고, 사령관이 착륙하자 20갤런짜리 코코아 아이스크림이 완성되었다. 비행대 장병들이 얼마나 기뻐했을지는 안봐도 비디오.근데 왜 싱글벙글 사고촌에 들어가냐고?뭔 말같지도 않은 이유로 3번이나 쓸때없이 고고도 비행이 이루어지자 상부에서는 조사를 실시, 이 모든 비행이 아이스크림 먹어보려고 했다는 것을 상층부에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그래서 칼렙 베일리 비행단장이 직접 비행대장을 조지고 겸사겸사 아이스크림 좀 얻어먹으려고 쳐들어갔다고 한다.배드엔딩5. 비상착륙1983년, 영국 해군의 시해리어를 몰고가던 이안 왓슨 중위는 나토 훈련에 처음으로 참여했다.무전 침묵과 레이더 침묵상태를 유지하면서 가상적선이었던 프랑스 항공모함을 수색하는 임무를 맡았던 왓슨 중위는 졸지에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한참 헤메다가 연료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우연히 왓슨 중위는 포르투갈의 화물선, 알라이고를 발견하고 화물선 인근에 추락해 구조받을 생각이었지만,시해리어가 VTOL, 즉 수직이착륙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이용해 그대로 화물선 위에 착륙한다.알라이고는 전투기를 실은채 스페인의 자치제도인 카나리아의 산타 크루즈 데 테네리페 섬에 4일만에 도착한다.도착 즉시 언론은 전투기를 실고 온 화물선에 대한 이야기들을 떠들어대기 시작했으며, 왓슨 중위는 군의 조사위원회에서 엄청난 욕을 먹고 지상근무로 돌려졌다고 한다.알고보니 해상훈련을 받기 위한 지상훈련조차 채 다 못받았다고.그렇지만 비행기는 멀쩡해서 사고기 ZA176은 수리를 받고 현역 복기했으며 이후 시해리어들이 모두 퇴역하자 뉴어크 항공박물관에 전시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사람은 배드엔딩, 기체는 해피엔딩.
작성자 : 대한민국인디언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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