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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VOVX9kV7HI?si=VnkLMMzyWfbMRAtM [자막뉴스] 동해에 급증하는 식인상어...뱃속 갈라보니 드러난 이유 / YTN지난달 31일, 강원 속초 외옹치항 앞 1.4km 해상에서 그물에 걸려 죽은 악상어입니다.몸길이는 2.4m, 무게는 150kg에 이릅니다.인근 속초 장사항 앞바다에선 두 달 전 몸길이 3m 가까운 대형 청상아리가 잡혔습니다.두 상어 모두 사람에게 위협이 될 정도로 성질이 난폭합니다...youtu.be와 나 최근에 속초 갔다왔는데 오싹하네... 해수욕장에 일정 거리 안에 그물망 확실히 설치하고 안전대비 철저히 하자
작성자 : ㅇㅇ고정닉
한국건축의 이해 - 10부 [탑파건축 각론 上]
[시리즈] 한국건축의 이해 · 한국건축의 이해 - 1부 [목조건축 개론] · 한국건축의 이해 - 2부 [목조건축 각론 I] · 한국건축의 이해 - 3부 [목조건축 각론 II] · 한국건축의 이해 - 4부 [목조건축 각론 III] · 한국건축의 이해 - 5부 [목조건축 각론 IV] · 한국건축의 이해 - 6부 [목조건축의 역사 上] · 한국건축의 이해 - 7부 [목조건축의 역사 中] · 한국건축의 이해 - 8부 [목조건축의 역사 下] · 한국건축의 이해 - 9부 [탑파건축 개론] · 한국건축의 이해 - 번외 [사찰건축 15선] 이미 언급한 바 이번 글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탑파건축의 흐름을 알아보려 함. [익산 미륵사지 석탑(639), 국보 제11호. 사진 : 문화재청] 최초의 석탑이라고 할 수 있는 미륵사지(彌勒寺址) 석탑은 모든 부재가 목탑과 같이 조립식인 이른바 조립형 석탑이었음.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국보 제9호. 사진 : 문화재청] 639-660년경 제작된 정림사지(定林寺지) 오층석탑은 여전히 조립형 석탑으로 미륵사지석탑을 계승했지만, 미륵사지석탑에서의 강한 모방성을 탈피하고 석탑으로서의 독창성과 추상성이 나타나기 시작했음.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682), 국보 제112호] 통일신라 석탑의 출발점은 감은사지(感恩寺址) 삼층석탑임. 감은사는 신문왕이 자신의 아버지 문무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찰로, 문무왕릉이 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졌음. 정림사탑과 최소 22년의 격차가 있는데, '석탑'이라는 개념에 있어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듦. 감은사탑 또한 탱주와 면석 등 여러 부재를 결합한 '조립형 석탑'이었음. [감은사지 동 삼층석탑 초층 옥개석. 사진 : 문화재청] 감은사탑은 최초의 신라계 석탑이었기에 목탑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 비록 목탑에 견줄 수는 없으나, 감은사탑은 최초의 석탑임과 동시에 가장 큰 규모의 통일신라계 석탑임. 이렇게 큰 규모는 제작하기도 어렵고 비효율적이기에 점차 작아지는 방향으로 변화하였음.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 노반. 사진 : 문화재청] 감은사탑은 최초의 석탑으로, 여러 시행착오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됨. 동탑과 서탑을 비교하자면 동탑이 서탑보다 먼저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동탑에서 보인 찰주공의 문제점이 서탑에서 해소되었으며, 이후 제작된 고선사탑도 서탑과 같기 때문임.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 기단부. 사진 : 문화재청] 감은사탑의 기단부 탱주 수(양쪽 끝 기둥 사이의 기둥 수)는 하층기단에서 3개(4칸), 상층기단에서 2개(3칸)임. 고선사탑도 마찬가지인데, 탱주의 수는 신라 후대까지 점차 수가 줄어드는 양상으로 변화하였음. 따라서 석탑의 편년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볼 수 있음. 아래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니 잘 살펴보기 바람. [감은사지 삼층석탑 옥개석. 사진 : 문화재청] 감은사탑은 이후의 석탑들과는 달리 옥개석을 4분할하여 이어붙였음. 이런 4분할 옥개석은 감은사탑 등 초기 석탑들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임. 현재는 감은사탑과 고선사탑에서만 확인할 수 있지만, 아래의 봉화대곡 탑재를 보면 이런 형태의 탑이 더 있었음을 알 수 있음. [경주 남산 봉화곡 제1사지 옥개석 탑재] 이렇게 여러 부재로 이루어진 옥개석은 상단에 나비장을 통해 고정하였음. 나비장이란 나비 모양(▶◀) 금속부재로, 석재를 접합시키는 역할을 함. [암곡동 시절 고선사지 석탑. 1975년 이전 촬영. 사진 : 문화재청] 고선사(高仙寺)는 본래 감은사가 있던 감포에서 경주 시내로 들어오던 추령 고갯길을 넘으면 나오는 암곡동에 있던 사찰임. 고선사는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사찰인데, 원효는 686년(신문왕 6) 입적하였으며 앞서 말한대로 682년 건립된 감은사탑보다는 연대가 늦으므로 682년부터 686년 사이의 시기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됨. 1975년 덕동댐 건설로 수몰지구에 포함되자 경주박물관으로 이전되었음. [고선사탑과 감은사탑 비교. 표 : 「감은사지 쌍탑과 고선사지 삼층석탑 비교 고찰」 (한정호, 2010)]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감은사지의 두 탑과 규모나 구조적인 면에서 완전히 동일하여 같은 조각집단에 의하여 제작된 것으로 추정됨.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감은사 쌍탑이 고선사탑보다는 먼저 제작되었지만, 거의 같은 시기의 작품임.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2층 탑신. 사진 : 문화재청] 탑신석을 잘 보면 2층 탑신석이 하나의 돌이 아님을 알 수 있음. 초기 신라 석탑은 2층 탑신까지 내부를 비우고 돌로 채웠는데, 당시 기술로는 어느 크기의 돌까지 들어올릴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음. [감은사지 삼층석탑 종단면도. 도면 : 문화재청] 위 그림과 같이 감은사탑과 고선사탑은 2층 탑신까지 내부가 비어 있어 돌을 채워 넣었음을 알 수 있음.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국보 제38호. 사진 : 문화재청] 이렇듯 감은사탑과 고선사탑은 신라 최초의 석탑들로 규모가 몹시 커 장중함이 돋보이지만 동시에 경쾌한 반전으로 마냥 무겁게만 보이지는 않음. [경주 구황동 전 황복사지 삼층석탑(692), 국보 제37호] 감은사탑과 고선사탑이 세워진 지 약 15년 이후인 692년(효소왕 1) 세워진 전 황복사지(皇福寺址) 삼층석탑은 시간차는 몹시 작지만 꽤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음. [전 황복사지 삼층석탑 금동사리외함 뚜껑 명문] 1942년 조사에서 석탑 내부에서 사리함이 발견되었음. 사리함의 뚜껑에는 명문이 있어 탑의 건립 경위에 대하여 상세하게 알 수 있었음. 명문에 따르면 황복사탑은 692년 32대 효소왕(孝昭王)과 효소왕의 어머니이자 신문왕의 부인인 신목태후(神穆太后)가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었으며, 700년 신목태후가, 702년 효소왕이 사망하자 그의 동생 33대 성덕왕(聖德王)이 효소왕의 명복을 같이 빌며 706년에 추가로 공양품을 봉양했음이 적혀 있음. [구황동 금제여래좌상(上), 금제여래입상(下). 국보 제79, 80호.] 금동사리함 내부에서 발견된 두 구의 불상은 국내에 전하는 몇 안되는 순금불상으로, 조성양식에 차이가 있어 입상이 692년 최초 봉안 시, 좌상은 706년 2차 봉안 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됨. 두 불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3층에서 볼 수 있음. (금동사리외함은 1층에서 전시중임) [경주 전 황복사지 삼층석탑 탑신부. 사진 : 문화재청] 황복사탑은 이전의 감은사탑이나 고선사탑에 비해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음. 또한 기단이 높아지고, 여러 장의 석재를 붙여 만들던 옥개석은 단일 석재로 제작되는 것으로 변화하였음. [전 황복사지 삼층석탑 기단부. 사진 : 문화재청] 기단부의 탱주 수를 본다면 상층기단은 2개(3칸)이 유지되고 있지만 하층기단은 기존의 3개(4칸)에서 2개(3칸)으로 줄어들었음. 아래의 라원리탑과 창림사탑에서는 아직 하층기단 탱주가 5개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두 탑을 좀 더 이른 시기의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음. [경주 라원리 오층석탑, 국보 제39호. 사진 : 문화재청] 전 황복사지 삼층석탑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경주 현곡면의 라원리사지 오층석탑은 황복사탑과 형태가 꽤나 유사한데, 탑신의 부피가 커서 당당함이 묻어남. 전반적으로 사용된 화강암의 재질이 이끼가 잘 끼지 않아 나원백탑이라고도 불림. [경주 라원리 오층석탑 초층 탑신. 사진 : 문화재청] 이 탑은 황복사탑과 같이 옥개석을 한 매의 석재로 구성하였지만, 옥개석의 크기가 4×4m로 몹시 커서 감은사탑이나 고선사탑과 같이 옥개석을 상하로 분리하였음. 대규모 석탑들은 이와 같이 옥개석을 상하 2매의 석재로 조립하는 경우가 있음. [라원리 오층석탑 옥개석 해체 모습. 사진 : 한국 미의 재발견 탑] 이렇게 최초 석탑인 감은사탑과 고선사탑에서 초기 석탑인 황복사탑, 라원리탑의 세대로 넘어가면서 탑의 규모는 줄어드는 양상이 나타났음. 한편, 탑신석의 폭에 대한 옥개석의 폭이 이전에 비해 줄어들며 이전에 비해 부피감이 커지며 당당한 인상을 줌. [라원리 오층석탑 기단부. 사진 : 문화재청] 라원리탑의 하층기단 탱주 수는 3개인데, 이것을 근거로 황복사탑보다 고식으로 추정되기도 함. [경주 천군동 동 · 서 삼층석탑, 보물 제168호. 사진 : 문화재청] 천군동사지의 쌍탑 또한 감은사탑과 불국사탑 사이의 작품임. 이 시기 작품 중에서는 유일한 쌍탑인데, 전반적인 비례감이 황복사탑과 많이 유사함. [천군동 삼층석탑 기단부. 사진 : 문화재청] 황복사탑과 동일하게 기단부 탱주는 2-2로 유지되고 있음. [경주 창림사지 삼층석탑, 보물 제1867호] 감은사탑, 고선사탑부터 불국사 삼층석탑 사이의 기간 동안 제작된 석탑은 나원리탑과 황복사탑만 찾아볼 수 있는데, 이외에도 이 시기의 탑으로 추정되는 것이 있음. 바로 창림사지 삼층석탑인데, 전반적인 비례가 황복사탑과 몹시 유사함. 1824년 추사 김정희가 창림사탑 안에서 발견한 무구정탑원기에 의하면 855년 제작되었다고 적혀 있어 이때 제작된 것으로 보았으나, 창림사지에는 탑이 여러 기 있었기에 이 탑이 반드시 9세기의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음. [창림사지 삼층석탑 기단부. 사진 : 문화재청] 창림사탑을 7세기 말의 작품으로 보는 측에서는 하층기단은 탱주가 3개(4칸)인 점을 드는데, 황복사탑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하층기단 탱주가 3개로 나타나는 것은 황복사탑 이전의 극초기 양식이기 때문임. 하지만 상층기단 탱주가 1개(2칸)으로 줄어든 것은 불국사탑 이후에나 나타나는 양식이고, 특히나 팔부중상이 새겨지기 시작한 것은 8세기 말부터인데, 이 때문에 반드시 황복사탑 전후의 양식으로 단정할 수는 없음. 아직까지는 조성시기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해 보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742), 국보 제21호. 사진 : 문화재청] 682년 감은사탑 이후 석탑의 조영은 점차 규모가 합리적으로 축소되고 기존의 '목탑성'에서 탈피해 석탑 고유의 개성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변화했는데, 그 변곡점상에 서 있는 탑이 바로 불국사 삼층석탑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사진 : e뮤지엄] 불국사 삼층석탑, 일명 석가탑은 742년(경덕왕 1) 옆의 다보탑과 같이 쌍탑으로 제작되었음. 나원리탑이나 황복사탑의 경우에는 초층 탑신석이 가로로 긴 직사각형에서 정사각형에 가깝다면, 불국사 삼층석탑은 상하로 긴 직사각형임. 이런 변화를 통해 더 상승감 있고 날렵해진 인상을 줌. [경주 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 국보 제236호] 경주의 둘뿐인 오층석탑인 라원리탑과 장항리탑을 비교해본다면 인상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음. 라원리탑은 탑신이 비대해 당당하고 무거운 느낌을 준다면, 장항리탑은 상승감 있어진 모습임. [무너진 장항리 오층석탑. 사진 : e뮤지엄] 참고로 장항리탑은 잘 본다면 유독 여기저기 불규칙적으로 깨진 곳이 많음. 이는 1923년 탑의 사리장치를 노린 도둑들이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여 폭파되었기 때문임. 위 사진과 같이 몇 년간 무너져 있다가 1932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음. [경주 마동 장수곡 삼층석탑, 보물 제912호. 사진 : 문화재청] 불국사 삼층석탑이 제작된 이후 불국사탑을 계승한 탑들이 많이 제작되었음. 8세기 말까지 주류 석탑들은 불국사탑을 충실히 모방하여 상층-하층기단의 탱주가 2개-2개(각 3칸)으로 조성되었음. 불국사 바로 옆 언덕에 있는 마동 삼층석탑은 석가탑을 계승한 좋은 예임.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국보 제34호] 이 시기에는 경주지역 밖에서도 많은 석탑들이 지어지기 시작했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임. 술정리 삼층석탑은 경주에서 조각공들을 파견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조각의 수준에 있어 불국사 삼층석탑을 능가할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임. 지금 보더라도 일부 깨진 부분만 감안한다면 현대의 작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임. [청도 봉기동 삼층석탑, 보물 제113호. 사진 : 문화재청] 청도 봉기동 삼층석탑 또한 이 시기의 대표적인 탑임. 상층-하층기단 탱주 개수가 4개-4개를 유지하고 있어 전성기 신라석탑을 계승하였음. 술정리와 봉기리의 삼층석탑은 사찰의 내력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두 탑이 위치한 지역은 각각 비화가야와 이서국이란 강력한 세력이 존재했던 곳임. 이들은 삼국 통일 이전 시기에 신라에 복속된 지역으로 통일 이후에는 백제, 고구려 지역들보다는 당대에 더 영향력 있는 집단이었을 거임. 이러한 배경이 이 지역에 수준급 석탑들이 제작된 이유가 아닐까 싶음. [김천 갈항사지 서 삼층석탑(758), 국보 제99호. 사진 : 문화재청] 갈항사지(葛項寺址) 쌍탑 또한 불국사탑과 14년 차이로 제작된 탑인데, 상층기단 면석에 이두문으로 758년(경덕왕 17) 후일 원성왕이 되는 김경신의 어머니 조문왕후 3남매에 의하여 제작되었음이 쓰여 있음. [김천 갈항사지 삼층석탑 기단부. 사진 : 문화재청] 이렇듯 8세기 중반, 석가탑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탑들은 날렵하게 변화한 새로운 신라석탑의 비례를 따랐으며 탱주 수는 상하 2개로 유지되었음. [산청 단속사지 동 · 서 삼층석탑, 보물 제82 · 83호] 단속사지(斷俗寺址)의 쌍탑을 보면 상층기단 탱주 수가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음. 후대로 갈수록 표현이 간략화되며 상층기단의 탱주 수는 2개에서 1개(2칸)로 변화하였음. 8세기 후반부터 이런 모습이 나타났고, 9세기부터는 상층기단 탱주가 1개인 것이 정형화되었음.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 기단부. 사진 : 문화재청] 이런 변화는 탑 자체 규모의 축소도 수반했는데, 이건 왕실세력이 축소하며 중앙집권력이 떨어진 영향도 컸음. 36대 혜공왕이 폐위된 이후 내물왕계 세력인 원성왕이 집권하여 한동안 중앙집권적 체제가 유지되는 듯했으나, 애장왕, 희강왕, 민애왕 등 그 후손들이 서로 반목하며 시해되는 상황이 지속되었음. 이런 상황에서 호족 세력이 힘을 키우며 사회가 혼란해진 탓에 이전 시기와 같은 완성도 높은 탑들은 제작되지 못했음. 자세한 이야기는 11부에서 설명하겠음. [울주 청송사지 삼층석탑, 보물 제382호. 사진 : 문화재청] 청송사지(靑松寺址) 삼층석탑에서도 1개로 줄어든 상층기단 탱주를 확인할 수 있음. 9세기 초 전형적인 석탑의 조성임. [울주 청송사지 삼층석탑 기단부. 사진 : 문화재청] 상층기단과 달리 하층기단은 여전히 2개의 탱주가 유지되고 있음. 또한 하층기단 갑석의 경우에도 앞선 탑들에 비해 정밀도가 한참 떨어진 모습임. [장흥 보림사 남 · 북 삼층석탑(870), 국보 제44호. 사진 : 문화재청] 옥개석의 비례 또한 이전 불국사탑 시대의 것과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음. 870년경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림사 쌍탑은 탱주 수가 상층기단 1개, 하층기단 2개로 9세기의 전형을 따르고 있으나, 각 부분이 단순화되고 특히 옥개석의 반전이 과하여 불국사 삼층석탑의 세련미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음. [장흥 보림사 남 삼층석탑 기단부. 사진 : 문화재청] 기단부 또한 몹시 형식화된 모습인데, 탱주의 표현이 평면화되고 각 부분이 단일 석재로 구성되어 전성기 석탑에서 보이던 명료한 표현은 느끼기 어려움.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863), 보물 제247호. 사진 : 문화재청] 863년 조성된 대구 동화사(桐華寺) 비로암(毘盧庵)의 삼층석탑은 하층기단의 탱주도 1개로 변화하였음. 이러한 모습은 9세기 중후반부터 나타나는데, 점점 더 탑의 형태가 간료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음. [傳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납석사리호, 보물 제741호. 사진 : 문화재청] 비로암 삼층석탑 내에서는 위 사진과 같은 납석사리호가 발견되어 조성경위를 명확히 알 수 있었음. 사리호의 겉면에는 44대 민애왕을 추모하기 위해 48대 경문왕이 조성하였음이 적혀 있음. 현재 동국대학교박물관에서 전시중. [경주 효현동 삼층석탑, 보물 제67호. 사진 : 문화재청] 이 시기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석탑이 제작되었으며, 이를 계승한 고려와 조선시대 석탑에서도 상·하층기단에 탱주가 하나씩 있는 석탑은 많이 찾아볼 수 있음.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기단부, 보물 제467호. 사진 : 문화재청] 여기에 더욱 단순화 혹은 변형된 예로, 하층기단이 생략된 경우도 있음. 특히 문경 지역에서는 봉암사에 1기, 도천사지에 3기, 내화리에 1기의 단층기단 삼층석탑이 남아 있어 주목할 만함.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보물 제186호. 사진 : 문화재청] 경주 용장사곡 삼층석탑은 자연암반 위에 세워진 특수성 때문에 단층기단을 사용하였음. 이 시기의 탑들 중에는 탑의 위치를 달리한 경우도 찾아볼 수 있음. [합천 월광사지 동 · 서 삼층석탑, 보물 제129호. 사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左), e뮤지엄(右)] 합천 월광사지(月光寺址)의 쌍탑은 조성시기가 서로 다른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지금까지 설명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함. 동탑은 상하기단의 탱주가 각각 2개, 서탑은 1개씩임. 이렇듯 통일신라 주류석탑은 탱주의 개수, 석재의 수량, 전체적인 비례를 통해 대략적인 편년이 가능함. 그리고 글의 내용 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층급받침의 수도 감소한다는 점 또한 제작연대 추정에 도움이 됨. 간략히 정리해 본 통일신라 주류석탑의 계보는 다음과 같음. 최초기 석탑 - 탱주수 3:2 / 몹시 거대하며 조립형 옥개석을 가짐 - 감은사쌍탑, 고선사탑 초기 석탑 - 탱주수 3:2, 2:2 / 여전히 거대하며 탑신석 부피감 큼 - 라원리탑, 황복사탑, 천군리쌍탑, 창림사탑(?) 전성기 석탑 - 탱주수 2:2 / 날렵하고 상승감 있는 외형 (석가탑계) - 불국사탑, 술정리탑, 장항리탑, 지산동탑, 갈항사쌍탑, 봉기동탑 후기 석탑 - 탱주수 2:1 / 전성기 비례 유지하지만 완성도 떨어짐 - 보림사쌍탑, 단속사쌍탑, 청송사탑, 청량사탑, 부석사탑, 신천리탑 최후기 석탑 - 탱주수 1:1 / 비례감 떨어지며 완성도도 부족 - 실상사쌍탑, 효현리탑, 오색리탑, 비로암탑, 서동리쌍탑, 불굴사탑 최후기 단층기단탑 - 탱주수 1 / 하층기단 없음, 위와 동일 - 화엄사동탑, 표충사탑, 봉암사탑, 용장사탑 물론 위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870년의 보림사탑보다 863년의 비로암탑이 탱주 수에 따른 구분으로는 선행하는 등 위 기준으로 무 자르듯 시대를 특정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임. 하지만 이 글을 통해 통일신라 석탑에 있어 거시적인 시대구분은 가능할 것임.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서 탑파건축사에 대한 글은 3-4부 가량 더 필요할 것 같음. 다음 글에서는 통일신라 전탑계열 탑의 전개와 이형석탑을 다루게 될 것임. - dc official App
작성자 : BABO고정닉
6/29 byob 간단한 리뷰
그 합산 1,000유로 짜리 비욥 ㄷㄷ주최자 분의 자비로 어떻게 낑겨들어갔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체급이 안 맞는 거 같아서 넥타 글렌그란트 27년을 추가로 들고 갔다. 갈수록 대충 적은 점 양해 바람1차 모음 사진 ㄷㄷ 아니 이게 얼마야첫 순서는 내 꺼라 사진 안 찍었는데 1. 넥타 오브 데일리 드램 글렌 그란트 27년 48.5%향에서는 시트러스 / 청사과 / 핵과류가 터지지만 맛에서는 오크의 씁쓸함이 나와 좀 아쉽다고 적어놨음뚜따했을 때는 이 정도로 씁쓸하지 않았었는데 그 새 맛이 바뀐 건가 싶기도 하고 암튼 그랬음오키 / 탄닌감을 좋아하시는 분은 그래서 괜찮았다고 하심2. 카덴헤드 하이랜드(글렌모렌지) 37년 46%N : 그란트와 비교했을 때는 무거운 향조의 버번캐 느낌 - 꽃 / 꿀 / 크림 / 너티 / 오래된 가구같은 고숙성 오크 느낌P : 도수에 비해 강한 볼륨감. 고숙의 위력? 과일 / 버터 / 파우더리 / 살짝 짭짤 F: 비슷하게 이어지나 썩 좋은 느낌은 아님.앞서 마신 그란트에 비해서는 좀 크리미 / 버터리한 무거운 느낌의 버번캐에 가까웠다. 프루티한 느낌이 뭉쳐있다는 느낌을 받았다.캐스크 정보는 그냥 oak 라고 써있어서 스까일 가능성도 꽤 있지만 셰리 느낌은 별로 못 받았음전날 땄다고 해서 좀 더 풀리면 맛있을 거 같다는 생각3. A.D. Rattray 올드 로스듀 (로크 로몬드) 27년 48%이것도 내가 들고 온 거라 사진은 따로 안 찍음생강 / 뿌리채소 / 화이트 초콜릿 등의 얘기가 나왔던 거 같으며개인적으로는 왁시가 너무 과해 삼같은 느낌이 나 좀 별로였는데 의외로 다른 분들께 호평을 받았음다른 비욥 때 좀 들고 가볼까...?4 & 5. 브룩라디 블랙 아트 7.1 & 11.1 악 ! 와인캐 밤꽃 맛...정신을 잃어 뭘 적을 생각을 못했다...둘을 비교했을 때는 향에서는 여러가지 베리 / 향신료 / 허브 등으로 큰 차이가 없었으나 마셔보니 11.1이 밤꽃 피니시가 훨씬 강했음참가하신 분이 갖고 와주신 고디바 초콜릿과 페어링하니 그 밤꽃 느낌이 팍 눌려서 상당히 괜찮았다.고디바 GOAT...물 타서 먹었을 때는 밤꽃 꾸릉맛이 더 강해짐 ㅅㅂ 암튼 나는 와인캐랑 안 맞는 걸로...6. 시그나토리 빈티지 언네임드 아일라(라프로익) 31년 50.4%이것도 내꺼라 사진을 따로 안 찍었음. 참고로 뚜따 컨디션N : 복숭아 / 리치 / 오렌지 / 레몬 / 피트(약품)복합적인 프루티에 라프 특유의 메디시널한 피트P : 과일 / 시트러스 / 몰트 / 피트맛에서는 프루티보다 몰티 & 피티한 느낌이 많이 올라옴.31년 숙성 치고는 피트감이 센 편이다.물을 타 마시니 몰티가 죽고 프루티한 느낌이 많이 올라온다.좀 풀리면 더 맛있어질 거 같음7. 고든 & 맥페일 스트라스아일라 25년 43%장향 / 더스티 / 한약재 / 카라멜 / 민트옛날 셰리 느낌이 있음7~80년대 글렌기리가 생각나는 뉘앙스발향력은 좋지만 도수가 낮다보니 팔레트 이후로 뭔가 슥 사라지는 느낌이 있다.8. 포트 엘런 SR 2005 5th release 25yo 57.4%사실 이거 보고 비욥 신청했다...암튼 기대가 컸는데 그만큼 맛있었던 한 잔브룩라디가 생각나는 치즈 (그라나파다노 + 페코리노? 라고 다른 분이 말씀하심) / 리치 / 패션프루트 / 파우더 / 허브 해조류 / 어란? 등 바다 느낌의 감칠맛프루티 / 몰트 등 맛은 상당히 진하고 달달함길게 남는 치즈 / 몰트 / 과일 등의 여운GOAT 개인적으로는 고체급의 브룩라디 버번캐가 생각나는 맛이었다. 거기에 열대과일과 해산물의 뉘앙스를 곁들인9. 치치부 타카시마야 화이트 와인 캐스크 59.8%청포도 알사탕 / 크리미 / 감칠맛 등 상당히 달달한 느낌거기에 와인캐 구린 느낌 약간,,와인캐 어려웡!10. 글렌드로낙 그랜저 배치 11 48.9%말린 베리 / 블랙 커런트 / 보라색 꽃 / 약한 황 / 약한 너티 / 밀크 초콜릿밑에 1995 싱캐에 비해서 플로럴한 느낌이 강조되며 상당히 마일드하고 밸런스가 미침절여진 혀로 인해 제대로 즐기지 못해 아쉬울 뿐11. 글렌드로낙 1995 싱글 캐스크 19년 아 사진을 따로 안 찍었네그랜저와 비교했을 때 좀 더 황이 강하고 좀 더 너티하고 호박엿같은 뉘앙스가 있었음살짝 라즈베리?암튼 요것도 맛있었음대만에서 30만원 정도에 구매하셨다던데 가성비 미친듯12. 글렌파클라스 1990 패밀리 캐스크 51.9%라즈베리 / 말린 베리 / 진한 초콜릿 / 곶감 / 호박엿 / 나무 / 강한 탄닌감생산딸기 느낌이 인상적이었음. 혀를 쫙 조이는 느낌그랜저가 섬세한 느낌이라면 얘는 걍 직관적으로 맛있음혀가 절여졌어도 얘는 걍 맛있다13. 글렌파클라스 1991 패밀리 캐스크 55.3%취한 나머지 뭘 적지를 못했다만 1990 패캐만큼 맛있었다1990보다 얘가 더 농축된 느낌떼샷14. 러셀 13년 얘도 따로 적어놓은 게 없지만 직관적인 체리 느낌이 기억에 남음. 13년은 다르다 !암튼 이렇게 먹고 존맛 라멘으로 해장함 ㅆㅅㅌㅊ
작성자 : 아일라이더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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