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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처참한 근현대 호주의 패전 기록
에뮤 전쟁 (1932년 11/2 ~ 12/10)-호주 정부군의 참패-집결한 에뮤군 일만여 마리 중 한달간 최대추산 500여마리의 피해를 입힘-1차대전 직후 전쟁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호주 정부는 공식적인 패전을 선포한 후 호주 서부 인근의 농토를 에뮤에게 양도함토끼 전쟁 (1910 ~ 진행 중)-1859년, 식육용 가축으로 전파된 토끼 24마리가 방목된 이후 야생화 시작-1933년 대량 번성, 농촌파괴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됨-1933년, 과학자 진 맥나마라의 전두지휘 아래에 토끼에게만 발병하는 바이러스 폭탄을 투하-1943년, 토끼의 개체수 감소에 유의미한 결과가 보이지 않아 실험 폐기-1950년, 바이러스 폭탄 실험 재개, 1953년 효과적인 개체수 감소 시작, 전체 개체수의 95% 절멸 확인-이후 살아남은 5%에게 해당 바이러스의 면역이 확인됨.-22년, 전체 개체수가 절멸 시도 종전 개체수와 동일 규모 수준으로 회복되었음을 확인(+해당 바이러스 면역종)-호주 정부는 공식적인 패전을 인정하고 바이러스 통제 전략을 포기붉은 여우 전쟁 (1845 ~ 진행 중)-1845년, 여우사냥을 위해 방목됨-이후 야생화된 개체가 급격히 번성해 2012년 720만마리 이상으로 추정되며, 감소세 없는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중-최소 10개종 이상의 토착생물군 절멸과, 최소 25개종 이상의 토착생물군 개체수 감소에 직접적 영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됨-대형 육상 포유류가 없는 호주에서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사냥을 통한 개체수 통제는 실패로 돌아갔고, 이후 일어난 포유류 독소 먹잇감 살포 또한 개체수 통제에 실패함-1999년, 호주 정부는 여우를 사냥할 수 있는 또 다른 외래종을 도입하자는 연구를 진행 중(진짜 미친새끼들인가)-테즈메이니아 데블이 여우 사냥에 특화되어 있다는 사례를 통해 테즈메이니아 데블을 호주 본토에 살포하자는 계획이 수립됨 (Fox Free Tasmania program)-2016년, 세금을 슈킹하기 위한 스켐 연구였다는 것이 밝혀지며 프로젝트가 좌초되고 호주 정부는 여우 통제에 공식적인 실패를 인정함고양이 전쟁 (1920 ~ 진행 중)-1788년 호주의 해수 구제를 위해 농촌 사회 중심으로 방류됨-1920년, 호주 본토의 새와 유대류의 개체수 감소의 직접적 원인으로 고양이가 지목됨-1950년, 토끼 개체수 감소를 위해 살포한 세균 감염된 먹이와, 그로인해 사망한 토끼들이 야생고양이들의 먹이 공급원으로 전락 (토끼를 제외한 어떤 종에게도 유해하지 않았던 것이 원인)-앞서 말한 여우는 적어도 토끼 개체수에 타격이라도 주는데 고양이는 여우와 먹잇감을 공유하는 주제에 토끼 개체수 감소도 시도하지 않음-호주 정부는 지난 60년간 야생 고양이 개체수 감소를 위해 19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지불했음을 밝힘(비용 소모가 가장 컸던 토끼도 20억달러 선에서 컷이었음)-2016년, 호주정부는 모든 지역에서 고양이 박멸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특정 소수 지역에서만이라도 박멸하겠다는 프로그램을 발표함-2019~2020년, 호주 전지역으로 퍼져나간 초대형 산불로 인해 고양이 개체수 조절 프로그램이 모두 중지됨.-호주의 야생 고양이는 연간 6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초래하고 있으며, 최소 22종의 토착 포유류의 멸종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음.-매년 호주의 10억 6,700만 마리의 포유류, 3억 9,900만 마리의 조류, 6억 900만 마리의 파충류, 9300만 마리의 개구리, 18억 마리의 무척추동물이 고양이에 의해 죽음.-2020년 기준 호주 본토 내 야생 고양이의 개체수는 1,100만 마리로 추정되며, 지속적인 사살과 TNR 사업에도 불구하고 증가세를 유지 중.-호주의 모든 고양이는 사육시 의무적으로 중성화해야 하고, 수입종은 농림부의 사전인가가 없다면 국내반입이 전면 금지됨.-호주의 고양이 박멸 정책은 TNR 사업의 가장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힘.낙타 전쟁 (2008년 ~ 진행 중)-19세기 희귀 짐승으로 수입되던 낙타가 '우연히' 야생으로 방류됨-2008년, 호주 중부의 야생 낙타 개체수는 약 100만 마리로 추산되며, 8년마다 두 배 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야생 낙타는 소, 양, 염소와 같은 가축에 적대적이고 캥거루와 토착 유대류와 같은 식량을 공유하는 것으로 중부지방 목축업에 피해를 입힘.-2009년, 밀레니엄 가뭄(00~10년 이어진 호주의 대가뭄)으로 낙타 개체수가 크게 감소-2009년~2013년, 야생 낙타 도태 프로잭트 진행. 최소 13만 마리 이상의 낙타를 제거했으나 유의미한 개체수 조절에 실패.-이후 야생 낙타 도태 프로잭트 전면 중지.-2020년 호주 산불 사태로 황폐화된 중부지방에서 낙타 개체수가 통제를 벗어남.-사막화된 중부 지방에서 수원을 찾아 떠나는 낙타들이 이제 중부 전역으로 산개됨.-호주 정부는 공식적으로 낙타 개체수 완전 통제에 실패를 공표함.큰유황앵무의 변 (2012 ~ 진행 중)-1880년, 큰유황앵무의 개체수 증가에 대한 언급이 시작.-1990년,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교외에서 대규모 무리가 관찰-2020년, 빅토리아주 내의 야생 유황앵무의 개체수가 770만 마리로 증가.-2023년, 주정부는 시드니 남부 앵무새를 대상으로 한 독 먹이 프로잭트를 진행.-농작물 피해가 연간 약 3억달러, 그 외에 부리로 부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앵무새의 특성 탓에 개별 가정의 피해는 산출 불가.-머리가 좋은 짐승이라 쓰레기통을 열고 뒤지고, 창문을 깨고 침입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 중.-지붕과 목재 구조물 전반을 파괴하며 가로등 커버까지 박살내 2018년 연간 앵무류로 인한 가로등 수리 접수건이 250건을 돌파-그러나 호주 정부는 개인에 의한 앵무새 사냥은 불법으로 규정하는 기조를 유지 중.잉어 대재앙(1980 ~ 진행 중)-19세기 식육 목적으로 수입된 잉어가 1950년, 1970년 발생한 홍수로 인해 수역 전체에 방류됨.-2022년, 호주의 한 분지(머레이-달링 분지)에서만 확인된 개체수가 3억 7,500만마리로 추산됨.-해당 지역 전체 어류 생물량의 90%가 잉어로 대체됨-연간 1,180만 달러 ~ 5억 달러 가량의 손실(생태, 사회, 관광문화, 수질저하로 인한 하류 영향, 기반시설 및 2차 영향 통괄 추산)이 발생하는 중.-2016년, 호주 정부는 국가 잉어 통제 계획(NCCP)을 발표. 잉어 바이러스를 상류에 살포하는 계획을 추진 중.-2024년, 연방 정부는 300만 달러의 연구자금을 추가로 추진-2025년, 아직 시행된 사업은 확인되지 않음.사탕수수 두꺼비의 난 (1940 ~ 진행 중)-1935년, 호주의 사탕수수 농장의 해충(사탕수수 딱정벌레)를 박멸하기 위해 102마리가 수입되고, 이후 야생화가 시작됨.-2011년, 야생화된 사탕수수 두꺼비의 개체수는 약 2억여 마리로 추산 됨.-점점 더 먼 서쪽으로 퍼지기 위해 뒷다리 크기가 50여년 만에 더 커지는 급격한 진화 과정을 거쳤음이 확인됨.-1994년, 사탕수수 두꺼비는 연간 60km를 이동하며 번성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밝혀짐.-알에서부터 성체까지 모든 개체가 독소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양서류를 포식하는 '모든' 종류의 토착 생물군을 광범위하게 절멸시키는 중.-주 먹잇감인 쇠똥구리의 개체수 감소로 인해 목축농가 내에서 소의 질병률이 유의미하게 상승하는 것으로 확인됨.-두꺼비를 먹잇감으로 삼는 최소 2종의 악어와 70종의 민물거북이 멸종 위기에 놓임.-1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두꺼비 개체수 감소를 위한 모든 대책이 실패로 돌아감 (RSPCA 지침 인용)걍 호주 << 이새끼들은 전쟁을 못함ㅇㅇ;;
작성자 : ㅇㅇ고정닉
B-747: 2년만에 만들어진 12조짜리 비행기
[시리즈] 민항기 · B-747: 재벌과 맞서싸운 한 부패 정치인의 이야기 · B-747: 1조원으로 비행기 1대 만들기 · B-747: 대통령의 아들에게 성접대를 제공하면 생기는 일 · B-747: 하워드 휴즈 vs 펜암 · B-747: 펜암, TWA, 하워드 휴즈, 그리고 오웬 브루스터 · B-747: 전설의 시작 · Never Forget, Never Forgive: KAL 858 · 인질은 죽이면 그만: 이집트 대테러부대 잔혹사 · LA에서 로마까지: TWA 85편의 기나긴 여행 · 해병대원의 비행기 긴빠이 대작전: TWA 85 · 님로드 AEW: 천하제일 병신대회 · 코멧: 혜성같이 사라진 제트 여객기 펜암을 구원할 비장의 무기는 바로 제트기였다. 1952년에 BOAC(現영국항공)에 의해 운항을 시작한 세계 최초의 제트 여객기 DH-106 코멧은 이때까지의 여객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편안함을 승객들에게 선사해줬다. https://m.dcinside.com/board/war/4291290 코멧: 혜성같이 사라진 제트 여객기 - 군사 마이너 갤러리1945년 8월 15일, 마침내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5,000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전쟁이었지만, 전세계는 전쟁의 상흔(傷痕)을 빠르게 치유했다. 미국은 2차대전에서 40만명의 군인들이 죽어나갔지만, 본토m.dcinside.com코멧에 대한 자세한 정보글은 여기를 참고하도록 하자 하지만 펜암을 구원한 항공기는 코멧이 아니라 보잉이 제작한 최신식 제트 여객기, B-707이었다. 미공군에 납품된 C-135 스트라토리프터를 기반으로 3-3 방식의 좌석배치가 가능하도록 동체폭을 400mm 늘리고 날개 전면에 오버런/실속 방지용 플랩을 설치한 B-707은 (크루거 플랩, 이착륙 과정에서 추가적인 양력을 생성한다) 코멧과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뛰어난 비행기였다. B-707은 코멧보다 15m 길었고, 130km 더 빨랐으며, 130명이 넘는 승객들을 한번에 실어나를 수 있었다. 펜암은 B-707의 런치 커스터머*가 되어 보잉에게서 B-707을 140기씩 주문해대며 1950년대 미국 국제선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졌고, *항공기 산업에서 특정 기종을 최초로 발주하는 항공사 항공사로써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World's Most Experienced Airline, 그러니까 '세계에서 가장 노련한 항공사'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팬암은 90개국을 넘나드는 방대한 노선망을 바탕으로 1년에 700만명이 넘는 승객들을 수송, 엄청난 흑자를 기록하여 당시 금고와 은행에 10억 달러(현재가치로 89억 달러, 12.7조)의 '현금'을 쌓아놨을 정도로 돈이 흘러넘쳤다. 당시 이 B-707로 엄청난 돈을 긁어모은 펜암의 초대 창업자이자 사장이었던 후안 트리페는 커다란 비행기->승객이 많다->더 많은 달러라는 논리로 1960년대 초부터 보잉에게 B-707보다 2.5배 더 거대한 제트기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는데, 마침 보잉이 CX-HLS에서 탈락하자 관련된 기술을 기반으로 존나게 커다란 여객기를 만들자고 보잉에게 제안, 1966년 4월에 열렸던 보잉 창업 50주년 기념식에서 B-747 25대를 일시불로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계약금만 1966년 기준으로 5.25억 달러에 달했던 이 거래는 (2025년 기준으로는 50억 달러, 6조 8000억원 정도) 민항기에 대한 단일 주문 최고액을 단번에 갈아치웠고, 이 기록은 펜암이 '91년에 파산한 이후에도 한동안 깨지지 않다가 2013년에 열린 두바이 에어쇼에서 에미레이트 항공이 여객기 200대를 일시불로 질러버리면서 깨졌다. 참고로 1965년산 F-4C가 1대당 190만 달러 정도였으니까... 펜암이 1966년에 B-747 대신 F-4를 구매하길 원했다면 276대에 달하는 F-4C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잉은 펜암의 기대에 회사를 갈아넣음으로써 응답했다. 일단 747같은 대형기를 생산할 공장이 존재하지 않아서 시애틀에서 북쪽으로 40km 떨어져있는 에버랫에다가 400헥타르짜리 부지를 매입해 공장을 새로 만들었다. 건설 과정에서 파냈던 흙만 300만 세제곱미터에 달했다고.. 이게 어느정도인지 체감이 잘 안난다면 대략 121만평, 축구장 570개, 잠실야구장 400개 수준이다. 부산 센텀시티 면적이 약 1.45 km² 정도니까 공장을 만드는데 파낸 흙으로만 센텀시티 전체를 2미터 깊이로 덮어버릴 수 있었다. B-747을 최종적으로 조립하기 위해 건설된 주조립동은 에버렛 공장 전체면적의 10% 정도를 차지하도록 설계되어 6개의 생산라인이 조립동 내부에 위치해있었다. 넓이는 대략 40헥타르 정도로써... 디즈니랜드 전체* 또는 미식축구장 75개와 맞먹는 크기다. 주조립동의 높이는 35m, 부피는 1337만 세제곱미터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건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 기준, 디즈니 월드는 11,100헥타르 여기 안에다가 무언가를 쑤셔박는다면, '이론상으로는' 올림픽 규격 수영장 5,350개, M1 에이브람스 전차 15만대, 20피트 표준규격 컨테이너 35만 TEU, 그랜저 GN7 97만대, 높이 2.3m, 넓이 32평짜리 아파트 69,200채를 수납할 수 있었다. 참고로 경기도에 건설된 동탄2신도시가 62,903세대 정도 이렇게 거대한 공장을 밤에도 가동시키기 위해서 주조립동 천장에는 100만개가 넘는 전구가 설치되었는데, 여기서 방출되는 열기로 인해 천장에 구름이 생겨버려서 보잉은 이를 없애려고 중앙집중식 환기시스템을 설치해야만 했다. 도시전설에 따르면 구름이 비까지 만들어서 뿌렸다고... 거대한 공장을 짓는다고 해서 비행기가 만들어지는건 아니다. 공장을 돌릴 노동자들과 비행기를 설계힐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보잉은 747을 개발/양산하기 위해서 50,000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함과 동시에 1,500개가 넘는 하청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사소한 문제라면, 400ha짜리 공장에다 5만명의 직원을 투입해 세계 최대의 비행기를 만드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고, 당시 보잉은 돈이 넘쳐나는 우량기업이 아니었다. 펜암이 5억달러가 넘는 금액을 보잉에게 쏴줬지만 B-747을 개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결국 보잉은 은행에게 돈을 조금 많이 빌렸다. 1968년 기준으로 747의 개발비용은 10억 달러, (2025년 현재가치로 89억 달러, 12.7조 원) 에버렛에 지은 공장의 건설비까지 합치면 보잉이 갚아나가야할 부채는 20억 달러가 넘어갔다. 이게 얼마나 미친 기록이냐면 당시 미국 모든 기업의 은행 부채를 싹다 합쳐도 보잉의 대출액을 뛰어넘지 못했다. 하지만 돈은 원래 갚으라고 존재하는 물건이 아닌가, 보잉은 747이 잘팔리면 그만이라는 마인드로 돈을 퍼부었고, 마침내 1968년 9월 30일에 최초의 보잉 747인 N7470이 에버렛 공장에서 롤아웃되면서 점보기의 탄생을 알렸다. 초도비행 도중에 플랩 하나가 고장나는 사고가 일어났으며, 날개가 스스로 진동하며 피로가 누적되는 플러터 현상이 주익과 미익 전체에서 관찰되었다는 사소한 문제점을 제외하면 개발과정에서 별다른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이대로 747을 출시했다가는 비행 도중에 항공기가 공중분해되는 대참사가 발생한 확률이 매우 높았기에 보잉 개발진들은 엔진 나셀(엔진을 날개에 매다는 파일런)과 수평꼬리날개, 플랩에다 열화우라늄 균형추를 집어넣어서 플러터 현상을 억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착된 JT9D엔진이 문제를 일으켰다 터빈 날개가 바람에 의해 뒤틀리고 휘어졌으며, 급격한 스로틀 조작을 시도하면 엔진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전원을 셧다운시켜버리는 결함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이미 20대가 넘는 B-747을 생산했던 보잉은 엔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설계를 변경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안그래도 넘쳐나는 부채가 더 증가한건 덤으로, 1969년 기준으로 747 프로젝트가 12시간 지연될때마다 발생하는 추가비용은 600만 달러, 현재가치로 740억원에 달했다. 뭔가 좆잉의 모습이 보인다면 그건 착각이 아니다. B-747이 개발에 착수한 다음 롤아웃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8개월, 통상적인 개발기간의 60%에 불과했다. 물론 CX-HLS사업으로 쌓아놓은 기술이 있긴 했지만 B-747급의 대형 여객기를 2년 남짓한 시간동안 만들어내는건 당시 기준으로도 정신나간 계획이었다. 참고로 포스트 B-747이라 불리는 A-380의 개발기간은 A-380의 전신의 전신인 초고용량 여객기(UCHA) 프로젝트 시작부터 첫 상업운항까지는 19년, 사업명이 A-380으로 바뀐 시점부터 계산한다면 7년, 순수 개발기간은 5년이 걸렸다. 물론 A-380과 B-747의 개발시기가 30년 가까이 차이나는데다 A-380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에어버스의 실수로 인해 대대적인 인도 지연이 발생한걸 감안해야겠지만, 그래도 B-747의 개발속도는 지나치게 빨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잉은 1969년 12월 12일에 N733PA라고 명명된 B-747-100을 펜암에 인도, 1970년 1월 15일에는 펜암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펜암 소속 B-747들의 명명식이 성대하게 치뤄졌다. 그리고 1970년 1월 22일에는 B-747 최초의 양산기였던 N736PA가 펜암의 런던~뉴욕간 노선에 투입되어 335명의 승객과 20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날아오르며 747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세상에 알렸다. 여담으로 747 최초의 상업비행에 투입될 기체는 원래 10번째로 생산된 B-747인 N735PA였으나, 이륙 직전에 4번 엔진에서 고장이 발생해버려서 N736PA가 땜빵했다는 속사정이 있다. 여튼,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들어낸 B-747은 이때까지 하늘을 날아다니던 비행기들과는 많이 달랐다. 유려한 형상의 2층 어퍼덱, 거대한 크기, 16개의 랜딩기어... 일단 전장 70.6m, 폭 6.8m, 높이 19.3m에 달하는 동체부터 당시 사용되던 여객기들을 모두 압도하는 크기였다. 거대한 크기에 걸맞게 어마어마하게 무거웠는데, 연료를 만재했을 경우 총중량이 320톤에 달했다. 참고로 B-707은 아무리 쑤셔박아도 150톤 정도... 320톤짜리 알루미늄 덩어리를 마하 0.8의 속도로 날려보내기 위해서는 강력한 엔진이 필요한 법, B-747-100에 장착된 P&W제 JT9D 터보팬 엔진은 원래는 C-5에 장착될 예정이었던 엔진인 만큼 45,000 파운드에 달하는 최대출력을 B-747에게 선사했다. B-707이나 B-52 등에 당착되던 P&W JT3D가 최신 개량형인 JT3D-7에 와서도 엔진에 물을 퍼부어야 겨우겨우 19,000파운드를 넘겼던걸 감안한다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건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B-747은 B-707보다 2배가량 더 무거웠지만 순항속도는 B-707보다 100km가량 더 빨랐다. 물론 엔진이 강력했던 만큼 내구성은 상당히 씹창이라 초기형인 JT9D-3A 기준으로 엔진수명이 3,000시간에 불과했다. 게다가 JT9D가 연비가 좋은 고바이패스 엔진임에도 불구하고 (터빈보다 팬에서 만들어내는 추력이 상대적으로 강력한 엔진) 연비가 1리터당 62m 수준으로 매우....뛰어나서 B-747은 연료만 200톤 가까이 들고다녀야 했다. 대신 수송능력 하나는 정말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B-707의 동체를 확장시키고 장착된 P&W JT4A 엔진을 P&W JT3D 터보팬 엔진으로 교체한 최종개량형인 B-707-320B의 최대수송능력이 190명 정도였는데, 애초에 크기부터가 B-707의 2.5배에 달했던 B-747의 경우에는 B-747-100 기준으로 승객들을 이코노미/비즈니스/퍼스트로 나눠서 태워도 366명이 들어갔다. 일본 국내선용으로 출시된 모델인 B-747SR의 경우 폭증하는 일본의 국내선 항공편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모든 좌석을 이코노미석으로 채워버리고 좌석간격을 좁혀서 최대 524명의 승객을 탑승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한 일본항공은 747-100의 2층 어퍼덱을 747-300 수준으로 연장한 B-747SR-SUD(Stretched Upper Deck)사양을 도입, 563명을 비행기 1대에 쑤셔넣고 다녔다는 후문이 있다. 참고로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태웠던 B-747은 비행기 1대에 500명이 넘게 들어가는 747SR을 운용했던 일본항공 소속기체가 아닌 엘알항공의 747-200이었다. 에티오피아 난민 1088명을 B-747 1대에 다 태워버렸다고 그리고 미군은 이렇게 개쩌는 수송력을 가진 B-747을 기반으로 여러가지 지원기를 제작하려고 시도한다. 다음편에 계속...
작성자 : 우희힝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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