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가 높아질수록 몸값이 뛰는 것은 당연지사.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몸값 때문에 웬만한 재력가나 권세가가 아니고는 홍매 집 대문 

안엔 얼씬도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홍매는 보통남자들에겐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그녀를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기름장수는 홍매의 집에 기름을 배달하며 먼발치에서 홍매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사병으로 죽느니 말이라도 한번 건네 보자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홍매의 산책길을 막아섰습니다.

  “당신을 오래 전부터 사랑하고 있었습니다.”그러자 홍매는 기름장수의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습니다.

 “나와 자려면 당신이 10년간 돈을 모아도 힘들 것이오.” 홍매는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매정히 돌아섰습니다.

  기름장수는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그 돈을 가져오기만 하면 나와 하룻밤을 보내주겠다고 약조하시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홍매는 꿈이라도 심어주자는 생각에 살짝 부채를 걷어 긍정의 미소를 보낸 뒤 작은 발로 산책길을 

재촉했습 니다.

  이후 기름장수는 오직 홍매와의 하룻밤을 위해 소처럼 일했습니다. 행색은 거지나 마찬가지였고 식사도 거르며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십 년이 흘러 마침내 하룻밤 화대를 마련한 기름장수는 홍매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녀의 미색과 명성은 과거와

 견주어 손색이 없었습니다.

  “자, 여기 당신이 원하던 돈입니다.” 홍매는 놀랐습니다. 그가 그 돈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약속은 약속이니 지켜야 하지 않겠소? 모일 모시에 내 방으로 오시오.”

  그런데 하필 그 날 밤. 홍매는 구토와 설사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습니다. 십년간 오매불망 기다렸건만 곱게 단장한 홍매는 온 데 간

 데 없고 토악질에 설사를 반복하는 아픈 여인이 복통을 호소할 뿐이었습니다.

  기름장수는 밤새 구토를 받아주고 병수발을 하느라 진땀을 빼었습니다. 그리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안정을 되찾은 홍매를 눕히고 나갈

 채비를 하였습니다. 홍매는 미안한 마음에 “10년간 이 날을 기다렸다는데 나는 몸값을 못했으니 다른 날을 기약해 다시 만나면 그때 

본전이 아깝지 않도록 해주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기름장수는 “됐습니다. 사정이야 어찌 됐건 나는 당신과 하룻밤을 보냈으니 그걸로 충분합니다.”라며 매우 행복한 표정으로 

새벽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홀로 남겨진 홍매는 황량한 기분으로 멍하니 앉아 있다 벌떡 일어나 맨발로 기름장수를 뒤쫓아나갔습니다.

  이후 기생 홍매는 화려했던 기방생활을 접고 평범한 기름장수의 아내가 되어 평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만약 기름장수가 홍매의 

몸값과 본전을 생각했다면 과연 홍매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다른 날 하룻밤 연정을 쌓을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평생 홍매와 같은 이불을 

덮진 못했을 겁니다. 순박한 기름장수의 진심과 본심이 기생 홍매의 사랑을 얻게 한 일등 공신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