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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코드 짜던 노인

바보아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3.01.24 22:59:03
조회 698 추천 5 댓글 1

벌써 사년여 전이다. 내가 프갤온 지 얼마 안 돼서 코드패드로 깔짝대던 때다. 더블릿에 문제 풀러 가는 길에 프갤에 잠깐 들러 일단 문제를 뿌려보고 가려 했다. 
프갤에 글마다 앉아서 댓글을 싸지르는 노인이 있었다. 더블릿 문제 하나 풀려고 코딩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욕을 굉장히 바가지로 싸지르는것 같았다. 좀 짜주면 안되겠냐 했더니

"그깟 알고리즘 문제 하나 가지고 짜달라오? 모르겠거든 전과나 하슈"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였다. 더 짜지도 못하고 짜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짜고 있었다. 처음에는 빠르게 댓글을 다는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컴파일 해보고 저리 컴파일하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코드를 더 줄이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제출 한다 해도 못 들은 체한다. 기다리기 지루하니 빨리 짜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컴파일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코드를 줄이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짜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줄일 만큼 줄여야 숏코드가 되지, 생코드가 재촉한다고 숏코드가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풀 사람이 좋다는 데 무얼 더 줄인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더 안줄여도 된다니까...."
노인은
"다른 데 가 짜달라우. 난 안 짜주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제출 할 수도 없고,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줄여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코드란 제대로 짜야지, 짜다가 손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짜던 것을 숫제 IDEONE에 올려놓고 태연스럽게 웹컴파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줄이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코드는 메인함수 하나만 남아버릴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코드를 보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짜기는 아까부터 다 짜여져 있던 코드다.

1등을 놓치고 다음으로 제출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코드를 짜가지고 취업해서 갑질을 할 턱이 없다. 클라이언트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푸념글을 싸고 언어 덕후질을 하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Geek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핵심을 찌르는 댓글과 시니컬 하면서 알려줄건 다 알려주는 모습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더블릿에 가서 코드를 제출했더니, 자유게시판에서 어떻게 짠거냐고 야단이다. 기존에 있던 코드들보다 훨씬 짧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단순히 변수명만 한글자로 바꾼다고, 타입을 없애고 무조건 정수형으로 한다고 숏코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별찍기를 할때 이중for문에 printf를 쓰는 대신에 for문 한개에 puts쓰는 것이 압도적으로 코드량이 줄어든다는 것이고 요렇게 애초에 접근방식을 달리하는 생각을 뒤집는 숏코드는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C언어는, 객체를 표현할때 구조체를 쓰고 함수포인터로 메서드를 표현하면 마치 OOP 처럼 사용하여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사이 C++ 은 한번 실수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런타임 오류를 잡을 때, gdb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명령어로 오류를 잡아낸다. 이것을 '디버깅한다'고 한다.

JAVA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JAVA 한다고 하면 보통 등급은 Servlet를 할 수 있는지, 그보다 나은 놈은 JSP를 할 수 있는지로 구별했고, 스프링을 쓴다는 놈은 3배 이상 비쌌다. 스프링이란 자바 플랫폼을 위한 오픈소스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이다. 말로는 스프링을 마스터 했는지 똥코더인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시키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돈도 적게 주는데 최선을 다할 리도 없고, 또한 말만 믿고 3배나 몸값을 쳐줄 갑들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生計)는 생계지만, 코드를 짜는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명품 코드를 만들어 냈다. 이 숏코드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코더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코드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디시에 방문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죽치고 있었던 프갤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마지막 남긴 글을 [프갤 망하가는구나 ㄱㅆㄲ드라!!] 멍하니 읽고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일간 베스트 게시물에 코드패드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댓글에 IDE ONE 주소를 알려주는 댓글도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사이트를 사용하였구나. 열심히 숏코드를 짜다가 유연히 웹 컴파일을 하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프갤을 클릭했더니 잡놈들이 질문글을 싸고 있었다. 전에 C언어 질문자를 쿵쿵 두들겨서 욕설을 내뱉던 생각이 난다. 숏코드를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숏코딩하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경쟁심을 자아내던 그 짧은 코드도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문득 사년 여 전, 숏코드 짜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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