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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르는 게임.jpg
유저들은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처음엔 그저 석기시대로 시작하지만어느새 현대문명에 이르게되고그러면서 상대방들을 잡으며생존해나가는 게임이라고만 생각했음자꾸 이상한것들이 눈에 들어옴처음 문명을 개척하는 게임이라기에는현대문명의 잔재들이 곳곳에 출현하기 시작어느 지역은 아예 피폭이돼있으며방호복을 착용해야됨아 핵전쟁후를 표현한건가?하지만섬안에 초원 사막 설원이 다보이는 모습거기다 주기적인 에어드랍이 주어지며곳곳엔 감시카메라들도 보이기 시작그렇게 유저들은 이섬은 누군가통제하는게 아닌가 생각이들기 시작그렇다면 그들의 목적은 무엇이고왜 가둔걸까?그와중 파랑 넥타이면…읍읍여긴 핵전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격리한 곳이거나혹은 아포칼립스를 시뮬레이션하는 섬지금 유력한 가설특유의 칙칙한 분위기와 미스테리함생존해야된다라는 분위기가 점점 퍼지면서역주행 인기를 얻게된 게임으로 남음- dc official App
작성자 : 네거티장애고정닉
가장 고급스러웠던 스파이.jpg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은 본명이며, 대중에겐 코코 샤넬(Coco Chanel)로 알려져 있다.샤넬은 12세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게 버려져 고아원과 수도원에서 자랐다. 이 시절의 경험은 훗날 그녀의 흑백 기반의 절제된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진다18세부터 재단과 재봉을 배우며 아틀리에에서 일했고, 1907년엔 가수를 꿈꾸며 뮤직홀에서 노래를 부르며 ‘코코’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곳에서 만난 장교의 지원으로 패션 사업을 시작했다샤넬은 1900년대 초, 프랑스 장교 에티엔 발상의 후원으로 사교계에 진출하며 패션 산업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영국계 사업가이자 연인이었던 아서 케이펠의 금전적·정신적 지원을 받으며 본격적인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이 지원을 바탕으로 샤넬은 1909년 파리 마르제브 거리에서 첫 모자 가게를 열었고,1910년에는 캉봉 거리(Rue Cambon)에 ’샤넬 모드(Chanel Modes)’라는 이름의 부티크를 설립했다.이 부티크는 훗날 메종 샤넬(Maison Chanel)로 발전하게 되며, 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샤넬 브랜드의 공식적인 출발점이 된다.이후 샤넬은 기존의 코르셋 중심의 제한적인 여성복에서 벗어나, 간결하고 실용적이며 우아함을 갖춘 디자인을 선보이며 패션계에 혁신을 일으켰다. 그녀의 과감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 그리고 여성의 움직임과 자유를 중시한 실루엣은 당시 사회적 관습에 도전하는 파격으로 받아들여졌고, 대중과 상류층 모두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샤넬이 처음 선보인 향수 No.5는 출시 이후 꾸준히 사랑받으며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향수로 자리잡았다.마릴린 먼로가 한 인터뷰에서 “잘 때 입는 것은 샤넬 No.5뿐이에요”라고 말한 일화는,이 향수가 당시 얼마나 아이코닉하고 대중적 영향력이 컸는지를 잘 보여준다.샤넬은 특히 남성편력이 심한 편이었는데샤넬을 창업하는데 도움을 준 전연인아서케이펄과 헤어지고도 친구로 지내며 본인의성장을 위해 필요한 남자들을 갈아치웠는데샤넬은 웨스터민스터 공작과의 6년간의 연애를 비롯해,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시인 피에르 르베르디 등 여러 저명 인사들과 관계를 맺었다.그녀는 당대 남성들의 재력과 영향력을 기반으로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며, 자신의 브랜드와 지위를 확립해 나갔다.1940년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하던 시기, 샤넬은 나치 장교 한스 군터 폰 딘클라게와의 연인 관계를 통해 독일군이 점령한 파리 리츠 호텔(Ritz Hotel)의 스위트룸에 장기 투숙하며 전쟁 기간 동안 비교적 안전하고 안락한 생활을 유지했다.이러한 배경은 훗날 샤넬의 친나치 논란과 도덕적 평가에 있어 주요한 논쟁점이 되었다.샤넬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정보장교 한스 군터 폰 딘클라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그는 ’슈파츠(Spatz)’라는 암호명으로 활동하며, 나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에게 직접 보고할 정도의 고위급 정보원이자, 프랑스 내 나치 스파이망 운영 책임자로 알려진 인물이다.샤넬이 이와 같은 인물과 사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한 정황은, 전후 그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도덕성에 대한 평가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요소가 되었다코코 샤넬은 1944년 프랑스 해방 이후, 나치 독일과의 협력 혐의로 프랑스 정부의 조사를 받았다.그러나 그녀는 과거 웨스터민스터 공작과의 인연을 통해 알게 된 당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도움을 받아, 정식 심문 전에 석방되었다.이로 인해 샤넬의 나치 협력 의혹은 법적 처벌로 이어지지 않았으며, 그녀의 전쟁 시기 행적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코코 샤넬은 윈스턴 처칠과의 인연을 통해 전후 정치적 보호를 받으며, 당시로서는 드물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여성으로 평가받는다.전쟁 중 나치 점령 하 파리 리츠 호텔에 머물렀던 샤넬은 전쟁 후 한때 스위스로 망명했다가, 1954년 파리로 복귀하여 리츠 호텔에서 1971년 87세로 사망할 때까지 거주했다.프랑스 정부는 나치 협력 혐의에 대한 명확한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이유로, 샤넬의 프랑스 내 안장을 공식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다.이러한 점들은 그녀의 생애와 유산에 지속적인 논쟁과 평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그렇기에 샤넬의 무덤은 스위스에있다.적과의 동침: 코코 샤넬의 비밀 전쟁의 저자 할 본은 샤넬이 나치 첩보기관 압베어에서 활동했다고 주장한다.샤넬은 나치 스파이 루이 드 보플렁과 연인이 되어 모로코와 스페인에서 첩보 활동을 벌였으며, 독일의 영국 비공식 휴전 제안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또한 반유대주의적 발언과 히틀러 찬양으로 독일 부유층과 친분을 유지했다는 증거도 제기되었다.이 같은 사실은 샤넬의 전쟁기 행적에 대한 논란을 증폭시켰다.이 책은 프랑스에서도 출간되었으나, 샤넬 측의 출간 금지 신청으로 유통이 중단되었다.그러나 2014년 프랑스 국영방송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의혹의 그림자』를 통해, 샤넬이 나치 스파이로 활동했음을 입증하는 국방부 문서가 공개되었다.문서에 따르면 샤넬은 코드네임 ‘웨스트민스터(F-7124)’로 나치 첩보망에 속해 있었다.샤넬의 스파이 활동 동기에 대해 여러 추측이 존재한다.첫째, 극우주의적 성향과 유대인 혐오로 독일에 우호적이었으며, 독일 장교와의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협력했을 가능성이다.둘째, 향수 ‘샤넬 넘버 5’와 관련된 재산권 회복을 위해 나치와 협력했다는 주장이다(역사학자 프랑 페레의 분석).셋째, 독일군 수용소에 있던 친지의 석방을 위해 스파이 활동에 가담했다는 추측도 있다.요약1.샤넬은 강력한 인맥과 사회적 네트워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남자들을갈아치워가며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했다.2.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나치 독일의 첩보 활동에 관여하며,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안정된 생활을 유지했다.3.그녀는 뛰어난 업적과 심각한 논란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인물로, 당대 여성상과 권력 관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결론아무리봐도 한녀 최상위호환이다.- dc official App
작성자 : 네거티장애고정닉
몽골 생존 벙 후기(복귀 및 휴식)
- 관련게시물 : 몽골 생존 벙 후기(조난 - 복귀)자전거는 이제 진짜 개판남 아침에 안개도 자욱해서 오늘도 쉽지 않겠구나 어느정도 시간 흐르니깐 날이 완전 좋아짐 그렇게 가다가 옆을 보니 우리 말고도 자캠을 하던 사람들이 있길래 손 흔들고 인사하다보니 스페셜한 홍차를 주겠다고 해서 컵 들고 따라감 대충 과자 두봉지 건네주고 홍차도 받아마심 폴란드인들이고 2주간 자캠 라이딩 한다고 하는데 자전거랑 짐을 합치면 거의 40kg이러고 한다 자전거도 생활차용 구동계를 달아놨던데 진짜 대단한듯 대충 사진 찍고 코스 보고 주의 할 점들 알려드리고 헤어졌고 얼마 전에 무사히 복귀한건지 메일도 왔음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들이 가야 할 루트에서 흙으로 뒤덮힌 3명이 돌아오고 있었으니 좀 불안하지 않았을까 계속 이동하던 중에 점점 배고파져서 과자나 먹자고 자리 피고 앉음 다시 파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사람은 등이 완전 빨갛게 쓸려서 고통스러워하더라 대충 말똥 소똥 나뭇가지 모아서 불지피고 점심 먹고 옷 말리면서 물놀이 좀 함 뭔진 모르겠는데 이쯤부터 인터넷이 잡히기 시작함 몽골가서 갑자기 연락 두절되버린 상황이라 부모님한테 살아있다고 보내고 친구들한테는 그들을 구하고 싶으면 싸이버거 내놓으라고 함 어느순간 신나게 도하하던 곳까지 도착했다 슬슬 문명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여기 물살이 좀 세서 그냥 가는데도 점점 대각선으로 이동함ㅋㅋ 적당히 사이트 잡고 이제 좀 사람다운 밥 좀 먹자고 식당 찾아 감 메뉴가 이거밖에 없다는데 나름 괜찮았음 육전을 튀긴 느낌이라고 하면 될라나.. 케찹이랑 간장 찍어 먹어서 간도 잘 맞았고 꽤 저렴하게 먹은듯 마트에 한국 과자들이 꽤 많아서 최대한 안먹어본걸로 찾아서 삼 바나나맛 아이스크림 몽골 아이스크림 맛있다고 하던데 진짜 맛있었음 캠프 돌아와서 그동안 생존하면서 터득한 모닥불 피우기 시작함 감자칩 까먹으면서 남은 일정 어떻게 갈지 의논하다가 첫날 파리떼한테 물어뜯기던 비포장 산길은 도저히 무리라고 판단, 터틀락 어쩌고랑 공룡공원 있는 길을 통해 가는걸로 결정 그러다가 오늘은 날도 맑았고 별이 보이지 않을까 해서 나가보니 진짜 별이 미쳤음 카메라에 담기려나 싶어서 찍어봤는데 역시나 안담기더라 이게 그냥 카메라 켜서 바로 찍은 상태(기본-야간 모드) expert raw 모드에 셔터스피드 15초 대충 바닥에 고정시키고 화이트밸런스 조절한거 이건 뭐 제대로 배워야 어떻게든 찍겠다 싶어서 대충 기억 날 정도로만 찍고 누워서 별 보다가 텐트 들어감 그리고 똥물 강물에 존나 빠지고 강물에 씻은 손으로 밥 주워먹어서 다음날 미약한 복통에 시달리게 됨... 다음날 드디어 포장도로를 타기 시작했다 근데 배 아파서 상황이 막 엄청 좋지는 않았음 진짜 거북같이 생기긴 했더라 여기쯤부터 한국인 관광객들 쏟아지길래 좀 재미 없는 코스겠구나 싶었음 그래도 아직까지는 풍경이나 날씨가 좋아서 볼만했음 이게 다리라는 건데 도하를 안해도 된다고 업힐 없다면서 저 앞에 뭔데ㅋㅋㅋ 코스를 내가 짜긴 했는데 진짜 할 말이 없더라 ...사실 이 앞으로 3개쯤 더 있다고 말하면 진짜 죽을꺼 같아서 숨겼음 편의점은 전기가 끊겨있어서 품목이랑 가격을 수기로 작성하는데 내가 고른 요거트는 가격이 안적혀 있다고 안팔더라 심지어 올라가는건 비포장인데 내려가는건 포장도로라 더 재미가 없어 여기 옆에 무슨 공항이 있어선가 하늘에서 볼 수 있게 뭐 적어둠 저 옆에 비포장길 타면 재밌겠는데 생각은 했지만 탈 수 있는 체력이 안남아서 점심 먹으러ㄱㄱ함 길가다 무슨 게르에서 음식 파는게 무더기로 있길래 적당한 집 들어감 처음 갔던 곳은 PTSD오게 전부 안된다고 말하길래 도망쳤고 두번째 집에서는 다행히 다 나오더라 역시 한국인 관광코스 중 일부가 맞긴 한가보다 본죽은 대체 언제 진출한건데 근데 배아픔+피곤함 겹쳐서 살짝 방심했을 때 모래에 미끌려서 그대로 굴러버림 대충 소독도 할 겸 쉬는데 옆에 또 뼛조각 있더라 좀 더 타면 울란바토르까지 도착 가능했을텐데 들개한테 쫒기다가 또 낙차해서 멘탈이 바사삭해지기더 했고 비구름이 몰려오는게 보여서 그냥 마지막 캠핑하고 다음날에 가는걸로 결정 이날은 바람이 좀 심하다가 잠잠해지다 반복해서 팩도 제대로 박아두고 짐도 텐트 전실에 두는 등 신경을 좀 썼음 잘 안보이겠지만 모닥불 피워놨늗데 존나 큰 개가 어슬렁거리면서 오더니 뼛조각 존나 씹어댐 뭔가 온순해보이기는 해도 방심하다 물리면 진짜 죽을꺼 같아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1-2시간쯤 뼈 씹고 자다가 어슬렁거리면서 돌아감 그렇게 바람도 심하고 비도 오고 텐트 날라가는거 아닌가 걱정하다가 자고 일어났더니 자전거가 사라짐 진짜 황당해서 말도 안나오는데 저 멀리 도랑에 뭐가 보여서 호다닥 달려감 ㅋㅋ앞브레이크 안잡혀서 낙차라도 한건가 휴대용 렌치(비트는 멀쩡히 남아있음), 보조배터리, 기타 등등 여러가지 물품이 사라지긴 했는데 제일 값나가는 자전거나 속도계는 남아있어서 진짜 다행이었음 다시 멘탈 추스리고 6일차 출발 도시 들어와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시장도 구경하고 숙소까지 와서 휴식 시작 어지간해선 여행가면 돌어댕기는데 이번엔 체력이 진짜 빨려서 소파에서 잠만 잔듯 안그러면 다음 일정인 울란바토르 200km 브레베 완주가 힘들꺼 같아서 진짜 먹고 자고 풀 휴식함 몽골맘터 치킨텐더 맛있음 메가커피 조리퐁 어쩌고 커피는 직접 내리는게 더 맛있다보니 카페가면 만들기 귀찮은거 위주로 먹는거 같음 말고기 샤브샤브 난 생각보다 누린내 안나길래 맛있게 먹음 근데 뜨거워서 입천장 다 까짐... 이건 시발 첫 맛은 괜찮더니 가면 갈수록 역해져서 못먹겠더라 테렐지 그 자체임ㅅㅂ 아이리쉬 커피 팔길래 이걸 여기서도 파네ㅋㅋ 하면서 마심 근데 진짜 위스키 넣고 만든거길래 ㄹㅇ꿀잠 잤음 휫자도 같이 먹음 담날 일어났는데 비스리님은 어디 갔길래 더 자다가 아침 먹자길래 카페 감 다른건 다 집에 있는데 사이펀은 없어서 시켜봄 깔끔한게 맛있긴 하더라 이게 한 2만투그릭? 대충 한화 8천원이라 보면 됨 큐브가서 수리받고 구경 좀 하는데 저 자전거로 울란바토르-맨체스터 14000km 자캠을 했다고 함 우린 정상이었어 그리고 먼 동굴 컨셉 터키음식점에서 고기세트랑 한번은 먹어보고 싶던 터키 커피 마심 가루랑 같이 끓이는거라 아래에는 거의 진흙같은 상태의 원두가 깔려있음 마무리로 샤슬릭도 먹었다 원래는 어디 펍 가서 먹을랬는데 사람도 많고 딱히 응대를 안하길래 숙소 앞에서 먹음 생각보다 도시에서 먹은 것들은 간이 적당했던거 같음
작성자 : 커_피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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