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라만차는 보고와도 뭔가 후기를 남기게 되지는 않는 이상한 극이야;
혼자 막 곱씹게 되고 혼자 막 감동하고.. 이렇다저렇다 말하기가 어려운 ㅋㅋ
그래도 좋았던 공연 후기가 좀 있었으면 해서 끄적대어봄

사실 어제 공연이 좀 이상했어
홍동키 회차치곤 웃음도 환호도 좀 없이 조용한?
오케 소리나 마이크 소리도 평소보단 좀 작았던 거 같고 미묘~하게 계속 합이 어긋나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계속 들었지
물론 내가 여러번 보니까 느껴지는 거고 극 자체에서 느껴지는 건 없었는데.. 아무튼 그랬는데
공연이 딱 끝나고나니 머리로 이렇다 저렇다 생각하는 게  무색하게.. 모야 이거 너무 좋아 헐...

홍동키는 묘하게 세르반테스의 냄새가 많이 나.. 극 내내 그래, 그걸 일부러 의도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까라스코를 보며 현실은 진실의 적이지 할 때 순간적으로 허리를 곧게 세우고 진지한 얼굴을 할 때 저건 세르반테스가 공작에게 하는 말이구나 하는 걸 그냥 느낄 수가 있어.. 그 직후에 바로 산초야아아아아~^ㅇ^ 할 때의 표정이나 자세 바뀌는 걸 보면 더 그렇지 ㅋㅋ
홍은 자세와 표정, 목소리톤이 확확 바뀌어서 그걸 유심히 지켜보고 있으면 지금은 동키구나, 아 지금은 세르반테스군.. 이걸 알수가 있어서 홍이 이 대사를 누구의 목소리를 빌어서 말해주고 있는가를 알 수가 있어. 그게 좋아 ㅋㅋ

임파서블 드림을 부르며 조금씩조금씩 노인 돈키호테에서 청년 세르반테스로 바뀌는 모습이 어제 가장 강하지 않았나 싶어
한 순간 눈빛과 표정이 달라지면서 허리를 꼿꼿히 세우며 청년의 모습으로 하늘을 응시하는 건 누가봐도 세르반테스였어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모습을 하고 부르는 꿈에 대한 이야기, 돈키호테가 알돈자에게 부르는 노래이지만 동시에 세르반테스가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더라

라만차는 돈키호테의 이야기가 아니라 돈키호테라는 극을 빌려서 말하는 세르반테스의 변론인 거잖아
너무 당연한 명제인데도 잊고 있었던 그 부분을 콕 찝어주는 느낌이 들었던 어제 공연이었어
돈키호테 할배의 이야기는 그저 세르반테스가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이고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일뿐이라는 게 느껴져
지하감옥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었던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답을 얻고 결말을 쓰게 되는 세르반테스의 이야기라는게

어제 참 환하게 웃으며 감옥을 나가더라구
세르반테스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었다는 게 어느 때보다도 확 와닿았어



조돈자는 노새끌이하고의 밀당이나 후반부는 정말 좋은데 훈초하고의 합이 미묘미묘해.. 이게 가장 아쉬움.. 그래서 혜경돈자가 생각나 ㅋㅋ
혜경돈자랑 훈초 합은 정말 찰진데 ㅋㅋㅋㅋㅋㅋ

알론조의 침대맡에서 걱정스레 알론조를 보다가 알돈자가 찾아오니까 이제 주인님이 기억하겠구나!! 하고 환희에 차는 훈초 표정은 참 좋아
너무 울어서 벌개진 얼굴로 용기를! 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도
거울의 기사씬에서 동키가 쓰러지고 나서 까라스코를 원망스레 쳐다보는 모습도
훈초는 정말 산초로 태어나서 일상생활에서 이훈진이라는 배우의 연기를 하고 산다는 말이 이렇게 와닿을 수가 없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