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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뜯어보기 CH-47편
개족보 파해치기 UH-60편헬기 가이드 모음압축수송초기 개발사CH-47 특성상 초기 역사는 CH-46이랑 겹침60년대 보잉이 인수했지만 Piasecki Heilcopter는 UH-60의 생산자인 Sikorsky의 VS-300(S-46), R-4에 이어 미국 내 3번째로 PV-2라는 헬기를 비행시켰음PV-2최초의 테일로터형 헬기인 VS-300처럼 테일로터를 사용하였는데, 이후 미 해군한테 자금 지원을 받아서 만든 PV-3는 최초의 성공한 텐덤 로터 헬기가 되었음PV-3의 뼈대(트러스형이라 외피가 없어도 구조가 유지됨)해군,해병대,해양경비대에 HRP-1으로 채택된 PV-3이때부터 이 회사는 텐덤로터의 길을 가기 시작했고, 이후 몇 종의 헬기를 더 만들고, 사명을 Vertol로 변경하고 56년에 CH-46의 초안이 된 V-107을 만들었음. 기존의 왕복엔진이 아닌 터보샤프트 엔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58년 4월 22일 처녀비행을 수행함.V-107이 헬기는 6월 미 육군이 YHC-1A로 명명하고 10대를 계약했지만, 전투용으로는 너무 크고, 수송용으로는 원하는 체급에 비해 너무 작다는 이유로 3대로 줄어들고, 이 V-107을 62년 해병대가 가져가면서 CH-46이 됨.CH-47A(1956~1966, 355대)T55-L-7(2650SHP)엔진, 최대이륙중량 33000LBS, 외부 인양능력(슬링) 10000LBS한편 육군은 줄어든 7대의 예산을 가지고 더 큰 헬기를 원했고, 여기에 맞춰 59년 V-114가 설계되었고, 60년 Vertol은 보잉에 인수됨. 이후 육군은 V-114를 61년 YCH-1B로 채택함.초기 V-114는 B-001부터 008까지 8대가 생산되었고, B-008까지 8대는 T55-L-5 엔진을 사용하여 각 1940SHP를 생산 가능했고, 이 중 B-002인 59-4983이 61년 9월 21일 15분간의 첫 시험비행을 실시함. 이후 B-006부터는 시제기를 상징한는 Y를 떼고 HC-1B로 명명됨.이후 육군과의 추가 계약으로 HC-1B 5대가 추가 계약되었고, 이 5대는 T55-L-7 엔진으로 바뀌어 각 엔진의 출력이 2650SHP으로 증가하고, 62년 트라이-서비스 방식에 의거 CH-47A로 재지정됨.B-001(59-4982)은 지상테스트용으로(3854시간을 장비에서 구름), B-006은 파괴 테스트를 위해 사용되어 비행하지 않음.B-001,006을 포함해 355대가 생산되었음.CH-47B(1967, 108대)T55-L-7C(2850SHP)엔진, 변경된 로터 블레이드, 보강된 기체 구조최대이륙중량 40000LBS, 외부 인양능력(슬링) 10000LBS베트남에서 파괴 CH-47B를 옮기는 CH-47B베트남의 환경 탓에(산악+고온) A형의 수송능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됨.블레이드 형상을 대칭형 에어포일에서 비대칭 에어포일로 변경하고, 엔진 출력을 높였고, 램프 바로 앞의 동체 모양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음.CH-47C(1967~1979, 270대)T55-L-11(3750SHP)엔진, 최대이륙중량 46000파운드, 슬링 20000파운드47B로 만족하지 못한 육군은 더 큰 수송능력을 원했고, 기존의 10000LBS의 슬링 하중 대신 15000LBS를 요구했음.이에 맞춰 설계된 47C는 최대이륙중량 33000LBS에서 46000LBS로 벌크업하고, 추가 연료탱크와 T55-L-11엔진으로 개량함.(항상 3750SHP를 다 쓰진 못하고, 84%로 제한됨. 이런 출력 제한은 주로 기어박스 한계로 생기는데 헬기에선 꽤 흔함)초기형은 기존과 같이 중앙의 2만 파운드짜리 후크 하나만 가지고 있었지만, 이후 지금의 3후크로 변경되고, 연료체계, 블레이드 개량 등을 거침. CH-47D(1979~1998, 444대)T55-L-712(3750SHP)엔진, 유리섬유 블레이드, (70년대 기준)현대화최대이륙중량 50000파운드, 슬링 20000~26000파운드대부분은 ABC형에서 개조된거임.(A 165, B 75, C 185대) 위 사진의 3대도 개조됨(아래부터 65-08808(47A) > 76-08008(시제) > 92-00304(47D) / 67-18479(47B) > 76-18479(시제) / 67-18538(47C) > 76-18538(시제) > 92-00303(47D))한대는 개조 후 시험비행중 추락으로 손실됨(84-24166, 기존 47A 64-13160)1976년 60년대부터 날아다닌 CH-47들은 5~6천시간 정도의 기체시간을 기록하며 기체 수명이 박살나고 있었음. 이에 육군은 보잉에 기체수명 증가와 업그레이드를 위해 계약을 채결했고, A,B,C 각 한대를 D 시제기로 개조하고, 3년간의 시험 끝에 1979년 첫 D형이 나오고 84년 처음 배치됨.이미 일부 C형에 적용됐던 T55-L-712엔진과, 유리섬유 블레이드를 적용하고, 조종석을 완전 아날로그에서 일부 디지털로 변경하고(글래스콕핏이 아님), 전기/유압/기어박스/AFCS(비행제어시스템)이 들어감T55-L-712엔진은 3750SHP으로 L-11과 같지만 엔진 하나로만 비행할 때 사용 가능한 4500SHP의 비상 출력이 추가됨Fatcow로 부르는 임무도 가능해졌는데, 1~4개의 연료탱크와 부속장비인 Extended Range Fuel System II(ERSF II)를 캐빈에 장착해 2400갤런의 항공유를 운반하며 다른 항공기에 급유해주기도 했외부 슬링 능력도 증가해 최대 26000LBS의 슬링이 가능해짐(전/후방 1.7만, 전+후방 2.5만/ 중앙 2.6만)MH-47D(1982?~1989?, 12대)(A,C형이 개조된)D를 기반으로 만든 특수전용 시누크. 정보가 거의 없음 E랑 거의 비슷할꺼로 예상MH-47E(1991~1989, 26대)연료탱크 개조, 보조연료탱크 장착, 급유봉, 레이더, FILR, 지형추적/기상레이더특수전을 위해 장거리 침투/돌격을 위해 생산된 버전, SAR도 수행했음.외부에 연료탱크도 커지고, 내부에 800갤런의 추가 연료탱크가 장착됨. 필요에 따란 3개까지 추가 연료탱크를 넣을 수 있는데 3번째 탱크까지 장착하면 최대이륙중량 초과로 연료를 꽉 채우지 못함.그리고 JP8은 불이 잘 안붙지만, 탱크의 빈 공간에 유증기가 차고 거기에서 발화는 가능하기 때문에 SOCOM은 연료가 없는 빈 공간에 비활성기체(주로 질소)를 채워넣는 시스템을 개발해서 장착했음CH-47F(2001~)글래스콕핏, 현대화초도비행하는 47F(98-00011)60년대부터 날기 시작한 시누크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육군의 집념으로 90년대 초부터 정비 소요를 줄이기 위한 기어박스 개선, 외부연료탱크, 내부 화물처리 체계, 3엽에서 4엽으로 늘린 블레이드 등을 요구했지만 그때쯤의 계획이 다 그렇듯이 예산 문제로 짤림.이후 몇가지만 살아남아 D형 개량(일련번호 X80XX들)을 시작했고, 생존성 향상을 위해 MWS(미사일경보장치),IRS((엔진 배기가스)적외선감소장치)등이 장착되고 MFD(다기능 디스플레이)에 통합되었고, 엔진도 T55-L-714(4777SHP)로 개량되어 2만ft 이상에서도 비행이 가능해짐항전장비는 기존 아날로그에서 글래스 칵핏으로 변경되었고, AFCS가 DAFCS로 변경되는 등의 개량이 들어감이후 20년부터 BLK 2 업그레이드를 실시하는데, 최대이륙중량 54000LBS와 4000ft에서 22000lbs 슬링을 위한 T55-L-715엔진과 연료탱크 개선으로 중량 감소 및 용량 증가, 발전기 한개 추가(총 3개) 등의 개량이 들어감.MH-47G(2002~)기존 MH-47D,E를 F처럼 개량*헬기 엔진 출력에 대해보통 기어박스 한계로(아님 엔진 수명/한계상) emergency(보통 2.5분), Takeoff(보통 10분), Intermediate(보통 30분), Continuous(무제한)으로 출력이 나뉘어짐참고용 T700-GE-401/701C 스펙시트(UH-60L, AH-64D 등 사용) 오랜만에 글 쓰는 이유:https://youtu.be/mbd1yMF-7iADCS에 시누크 나옴(6월 말)
작성자 : ㅇㅇ고정닉
의외의외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가문.jpg
https://youtu.be/OjNpRbNdR7E바로 유교의 대빵 공자의 가문무려 기원전 551년 사람으로, 공자가 죽은지도 벌써 2500년 정도가 흘렀지만그 후손이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다.공자의 가문에 작위를 부여하기 시작한건 우리가 아는 최초로 짱깨를 통일한 진시황 때 부터로,시황제가 공자의 9대손인 공부를 노국문통군(魯國文通君, 노묵훈 아님)에 봉하면서 시작됐다.이후 유학이 중국 최고의 학문이 되면서 공자의 위상 또한 올라갔기에 후손들이 계속해서 작위를 이어받게 되었고여러번 작위명이 바뀌다가 북송 시기인 1055년 연성공(衍聖公)이란 칭호가 정해지고 이것이 청나라 때까지 이어진다.(공자의 77대손이자 31대 연성공 쿵링이(孔令貽, 공령이).(쿵링이의 아들이자 마지막 연성공, 초대 대성지성선사봉사관이기도한 쿵더청(孔德成, 공덕성)그렇게 청나라 때까지 이어지다 중화민국이 청나라를 멸하고 건국된 이후로도 그 특수성이 인정되어 연성공 작위가 유지되었으며이후 연성공 칭호가 대성지성선사봉사관(大成至聖先師奉祀官)로 바뀌고, 무려 장관급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 된다.이렇게 군주제가 무너지고 공화제가 이뤄진 중국에서도 그 지위를 인정받나 했지만어림도 없지 개같이 홍위병 입갤 ㅋㅋㅋㅋ중공 짱깨가 대륙을 먹으면서 진나라 때부터 이어져온 공자 가문은 본토 대륙에선 완전히 뒤져버리고 만다.단순히 공자 가문의 특별한 지위를 박탈한 정도가 아니라, 문혁 시기 공자 가문의 땅에 쳐들어가서 온갖 유적은 다 때려부순 뒤공자 가문의 무덤을 파헤쳐 뼈는 깨강정 내버리고 덜 썩은 시체나 미라는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아서 제대로 티배깅을 갈겨버렸다.물론 공자의 후손들을 모아다가 집단린치를 가한건 당연지사.다행이라면 다행이게도 공자의 직계 후손들은 장제스가 대만으로 런칠때 같이 런쳤기 때문에공자가문이 완전히 고로시 되는 일 만큼은 피했다.당연히 공자 가문의 수장이던 쿵더청은 본인 가문의 땅과 조상님의 시체가 고로시된 것을 보며 분노에 치를 떨었고이후 짱깨가 언제 저지랄 떨었냐는듯 스리슬쩍 공자 가문 띄워주면서 쿵더청에게 호감작을 시도하자당연히 열이 제대로 뻗친 쿵더청은 주먹을 꺼내기전에 꺼지라며 뺀찌를 쳐맥였다.이런 짱개새끼들이 공자학원 운영한다는게 ㄹㅈㄷ일 뿐이다...어쨋든 공자 가문의 성지성선사봉사관 자리는 유지되면서 아직까지도 공자 후손이 대만에서 이어져 오고 있다.현재 공자 가문의 수장은 쿵더청의 아들 쿵추이창(공수장)이다.이 사람은 2019년 논산시에 와서 유교 호감작 한번 하고 간 이력이 있다.참고로 공자의 후손은 연성공 뿐만 아니라곡부 공씨라 하여, 고려 시절 귀화한 공자의 후손 공소 중시조로 두는 (시조는 당연히 공자) 성씨가 있는데이 곡부 공씨 중에서 무려 쿵추이창보다 항렬이 하나 높은 78대손 공자의 후손이 현재 대한민국에 있으니스트리머 공혁준 되시겠다.2줄 요약1. 공자 후손 아직까지도 살아있음, 대충 2500년 됨2. 공자 후손 공혁준임 ㅋㅋ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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