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공허를 바라본다. 아니, 완전한 공허라 부르긴 힘들겠지. 빛바랬지만 아직 그 선홍빛을 품은 조그만 영혼이 소멸을 갈망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원치 않던 자신을 받아버린 자.

당신을 위해 그 어떤 희생도 감내하던 자.

눈빛 하나, 손짓 하나 받지 못한 어버이를 충직적으로 따르는 자.

당신을 위한...완벽한 인형.

당신은 손을 뻗었다. 저 인형에게 복종의, 지배의 실을 드리웠다. 평소에 있던 작은 저항도 없이, 영혼은 얌전히 실에 자신을 맡겼다. 

이번에는 볼 수 있을 거라고, 그걸 보게 된다면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붙잡은 이유가 있으리라 당신은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그게 당신으로 무엇으로 이끌든 무슨 상관이랴. 어차피 친절 몇 번, 칼질 몇 번에 산산히 흩어질 운명인데. 

당신은 실을 타고 영혼으로 흘러들어간다. 당신, 천사의 의지가 그의 화신에게 쏟아부어진다. 숨이 막히고, 머리가 산산조각나는 듯한 고통이 밀려들어온다. 영혼은 견딘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길 듯한 괴로움을, 당신을 위해 견딘다. 창조된 목적을 그대로 이행하는 궁극적인 노예의 모습에 당신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웃음이 당신과 함께 흘러간다. 의지가 들이부어지는 그 과정에도, 당신은 마음껏, 마음껏 그 입을 열어젖힌다. 무표정하던 그릇이 웃음에 잠식된다. 이제 그릇은, 당신은 바닥에 뒹굴며 양껏 평생 웃지 못할 웃음을 토해낸다. 토사물에 고통의 눈물이 섞이든, 오래 전 사라진 줄만 알았던 자유가 터져나오든 의미없다. 아니, 오히려 좋다고 해야 될까.

당신이 웃음을 거뒀을 때, 영혼이 당신의 빛을 찾았다.

화신은 당신의 의지로 가득 찼다.

그렇게, 프리스크가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