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아 안녕?
얼마 전에 봤다던 사람 있잖아, 바닷가에 산다는.
그 사람을 일주일마다 볼 일이 생겼거든.

근데 말야 혹시 지평이 너도
그 사람을 어디서 만난 적이 있진 않았을까 궁금해지더라고.

예를 들면
나 전달법 학원이나 스피치 학원같은 데서 만났다던가.
아, 둘 다 독학을 해서 학원같은데는 안 다녔겠구나..;
(참고로 지평이 너 천재 투자자로 유명했잖아,
그 친구도 6살에 천자문을 뗀 신동이었고 설대 공대를 수석으로 입학했대.)

아님, 혹시 '다섯 글자로 말해요'같은 특강같은 건 들은 적 없었을까?

어, 이게 왜 궁금하냐면
지평이 너는 모르겠지만,
너 정말 말을 너무 잘해서 너한테 반한 사람들이 엄청 많았거든.
게다가 목소리도 좋고 발성, 톤, 호흡조절까지 완벽한데 눈빛, 표정까지.
하 말해 뭐 해..

그런데 그 친구도 그렇더라고.
바닷가 파도 소리때문에 좀 더 크게 말하고, 누구한테나 반말이 일상인 게
너랑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그 친구가 중 2병 걸린 조카같은 여중생에게 카페인에 대해 설명할 땐,
지평이 니가 삼산텍한테 지분 설명하던 신이 생각나더라니깐.
둘 다 딕션이 장난 아닌데,
대상이 달라서 그런가 표정과 말투는 또 완전 다르고.. 하 신기.

아 진짜 저게 왜 궁금하냐면
지평이 니가 갑자기 훅치고 들어온 말 때문에 여기저기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잖아.
근데 이번에 바닷가 그 친구도 갑자기 훅 들어와서 사람들을 뒤집어 놨어.

신기한 건, 지평이 너가 한 말도 그 친구가 한 말도
고작 다섯글자뿐이라는 거야.

'좋아합니다.'

'뜨겁다.너무'

지평이 너가 달미에게 솔직하고 싶어서 용기를 내고
부담주기 싫어서 담백하게 했다던 말,
'좋아합니다.'
우리에겐 영원히 기억되는 국수고백신이고,
지평이 넌 속으론 엄~청 떨었다고 했었잖아.

바닷가 그 친구가 한 말은
'뜨겁다.너무'
인데, 아무에게나 쉽게 말하지 않을 자신의 서사를 들려주는 썸녀가
술기운이 올라 덥고 빨개진 얼굴을 자꾸 걱정하니까
얼음통을 잡고 있던 자기 손으로 얼굴을 식혀주면서
그 썸녀에게 해 준 말이야.

이 친구도 차분하고 다정스럽게 말해주는데,
보는 사람들은 실은 그 친구가 더 뜨거웠을 거라고 하더라.
(아직 그 친구 속이 어땠는지는 모르는 상태야.)

저 말을 한 날,
완전 국수고백때처럼 여기저기서 난리가 나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은 두 단어밖에 모르는 건지
온통 'ㅁㅊ, ㅅㅂ' 만으로 10단 고음만 내지르고
숨이 멈췄다는 둥 잠은 다 잤다는 둥 하는데,
진짜 그 국수고백 때가 오버랩되더라.

중간중간 코러스 넣어서
'아, ㅁㅊ ㅅㅂ' 하고 너네처럼 다섯 글자 맞추기도 하고
'ㅁㅊ ㅈㅉ ㅅㅂ' 하고 좀.. 교양없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게 다야. 더 긴 말을 못해. 그저 말잇못!

(난 물론 교양을 따지는 편이라..
입막고 했어. 입이 먼저 움직이긴 하더라..)

근데, 그게 끝이 아니고
담담한 너희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점점 더 과몰입하더니
갑자기 마악 울기 시작하는데,

달친놈에 이은 혜친놈 거리고
(어? 달이랑 해?  아 나 또 과몰입한다. 어쩌냐;;
달은 밤이라 비춰주기만 한 거고, 해는 낮도 밤도 다 비춰주니까 잘 될려나..
아 뭔 소린지 말도 헛나온다. 미쳤다..)

서사 생각하니까 갑자기 울컥한대.
덤덤하게 말하니까 더 슬프대.
폭스가 아니냐며 슬프대.
그러면서 막 우는데
ㅠㅠㅠㅠ ㅜㅜㅜㅜ밖에 안 해 또.

하.. 다섯 글자로 사람들의 일상이 흔들린 게 얼마만인 거니? 정말.


그래서 말인데, 지평이 너랑 그 바닷가 친구랑 언제 만난 적 없었을까?..

..........

아 둘 다 후속타도 있는데,,

'내 손이.. 컸네.'  '됐어, 이걸로 충분해.'

'그냥 놀자, 나랑~'  '낭만에 불을 붙였네.'

이것도 정말 너무 쎈데 내 역량으론 표현을 못하겠어;;
이만 가 봐야할 것 같아..
진정이 되면 또 올께..
그럼, 아프지 말고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