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와이프와 함께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밖으로 나가자는 우리 집 총리님의 성화에 못 이겨 발걸음을 옮겼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문화생활도 할 겸 서울 나들이를 위해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다행히 부지런하게 움직인 덕분에 주차 공간 걱정은 없었고, 계획대로 행복한 주말을 보냈다. 맞벌이에 지친 와이프도 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온 덕에 기분이 한껏 업 되어 있었다. 뭐, 모시고 다니는 나는 피곤에 절어 있지만, 즐거워하는 모습에 보는 내가 흐뭇하다.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사진 / ⓒ 보배드림_user 신사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무렵,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도 하고 시원한 곳을 찾아 이동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주차했을 당시엔 없던 옆자리에 대형 SUV 차량 한 대가 우리 부부의 발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주차 공간을 나누는 선을 밟고 있는 데다 핸들마저 꺾어 놓은 채로 나가서, 도저히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심하면 간신히 나갈 수는 있어 보였지만, 괜히 나가다 긁으면 나만 손해다.
마치 장판파의 장비처럼 “너는 나갈 수 없다!”를 외치는 듯한 당당함이었다…
다행히 앞 유리에 연락처가 있어 연락을 취했으나, 받지 않았고 한참을 반복해서 연락을 취하자 간신히 받았다.
문제의 차주(A) : 누구시죠?
나(B) : 바로 옆에 주차된 차량인데 바퀴가 틀어져 있어서 나가기 힘들어서요. 차 좀 옮겨 주실 수 있나요?
A : 주차 잘하고 나왔는데요? 나가기 힘들지 않을 텐데요? 지금 공연 시작 직전이라 주차장까지 가기 힘들어요.
B : 아니 그럼 저 보고 계속 기다리라고요? 선생님 차 부딪혀도 아무 말 하지 않으실 자신 있으세요?
A : 왜 화를 내는데요? 그리 바짝 붙이지도 않았는데! 어디가 부딪힌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가네요. 아무튼 공연 끝나고 갑니다. (뚜…뚜…뚜…)
상대 차주는 당당했다. 그리고 나는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와이프는 주변 카페에서 기다리자며 팔을 붙잡았지만, 이미 이성의 끈은 한 가닥만 남은 상황이다. 텁텁 막히는 열기가 가득 찬 주차장에서 오기가 생겨, 와이프는 시원한 곳으로 보내고 차주가 오기까지 계속 기다렸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났을까? 문제의 차주가 어슬렁 어슬렁 걸어왔다. 나는 상황을 보라며 항의했고, 문제의 차주는 별것 아닌 것 가지고 난리냐며 차를 차고 휙 가 버렸다.
답답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인터넷에 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긴 하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주차선 물기 / ⓒ 보배드림_user 청산에살으리오
해당 사연은 실제 사례를 각색한 소설이다. 사실 현실은 더 심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주차 갈등은 곪을 대로 곪아 자칫하다간 큰일이 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마치 층간 소음으로 비극이 벌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스티어링 휠 정렬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 외에도 주차 경계선을 침범해 주차하거나 이중 주차 후 기어를 P단에 놓는 등 주차 민폐 쪽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앞서 소개한 이야기에서 홧김에 주차된 옆 차량을 치고 나간다면 피의자가 되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정황상 옆 차량의 문제지만 정작 이렇다 할 처벌을 못 내리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처럼 주차 관련 갈등이 벌어졌을 경우, 도로보다 골치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법과 시민의식
주차장 내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생각보다 해결하기 복잡 해지는데, 이유는 주차장이 도로교통법상 도로로 취급되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주차장 법을 살펴보면, 주차장 내 사람이 다치거나 차량 혹은 주변 시설이 파손되었을 때 피해 주체가 보상받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주차를 엉망으로 한 차량이 원인 제공을 해도 법 때문에 나가다 부딪힌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만약 이의 제기를 통해 과실 여부를 따지게 되면 보험사 간 복잡한 의논이 오가게 되며 상황 증명을 위해 수 없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주정차 차량을 파손했을 경우, 100% 가해 차량의 잘못이 맞다. 멈춰 있는 자동차를 파손시켰으니 잘잘못을 따지기 쉽다. 다만, 앞서 살펴본 이야기처럼 피치 못할 사정에는 가해 차량의 차주 입장에서 억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음에도 제도적 개선 소식은 없다. 주정차 상황을 고려해 과실 비율을 정해 둔 조항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해도 앞서 언급했듯 보험사 간 치열한 싸움 없이는 과실 비율이 바뀌기 어렵다. 이렇다 보니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주차 관련 갈등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는 중이다.
그나마 주차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정된 제도로 지난 3월 시행된 ‘문콕 방지법’이 있으나, 이 또한 신축 건물이나 아파트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기존의 주차장처럼 주차장 확대가 곤란한 경우에는 이전 규정이 적용된다. 결국 우리가 이용하는 대부분의 주차장은 변화가 없다는 뜻이다.
만약 개별 주차 공간을 넓혀 문제를 해결한다 하더라도, 넓어진 만큼 주차 가능한 대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언 발에 오줌 누는 상황이 될 뿐이다. 결국 현 상황에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주차를 잘 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해서 굳이 언급해야 하나 싶지만, 당연한 것을 제대로 하지 않기에 언급되는 것이다. 이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운전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최근 대형 차량의 비중이 늘면서 주차 환경이 점차 열악해지고 있다.
국내 대형 SUV 중 카니발과 팰리세이드의 차폭을 살펴보면 각각 1985mm, 1975mm다. 기존 주차장 기준 너비는 2300mm로, 정 중앙 주차를 했다는 가정하에 수치상 315mm~325mm의 여유가 생기지만, 실제로는 좌우 1/2씩 공간이 남기 때문에 한 쪽 면당 157.5mm~167.5mm의 여유가 전부다.
보통 탑승객이 쉽게 내리려면 한 쪽 면당 300mm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대형 차량이 바짝 주차선을 물고 주차를 할 경우 내리기 어렵다. 여기에 스티어링 휠 정렬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70mm~100mm가량 밖으로 더 나오기 때문에 여유 공간은 50mm~100mm가 고작이다. 여기에 사이드미러 너비까지 고려하면 나가기 더욱 어려워진다.
일반 운전자들이라면, 조금 귀찮더라도 차량 선에 잘 맞추어 주차를 했으면 한다. 혹은 한 쪽 면이 차량이 없는 곳이라면, 운전자 본인과 다른 차주를 위해 반대편으로 바짝 붙여 주차를 하는 ‘친절한 센스’를 발휘해보자.
만약 초보운전자라면 조향 연동 후방카메라 등을 활용하거나 없는 경우, 몇 번이라도 좋으니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며 올바른 주차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력을 해도 안 될 경우 주변을 지나는 운전자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하자. 잠시 부끄러울 수는 있으나, 모든 운전자들은 ‘노력하는 초보운전자’에 대해선 대부분 관대하다.
가뜩이나 점점 악화되는 주차 환경을 개선할 수 없다면, 서로의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삭막하고 나만 생각하는 현대 사회라지만, 결국 삶이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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