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차를 사거나, 렌터카를 운전할 때 주유소에서 한번쯤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차는 주유구가 오른쪽에 있어서 반대편으로 가셔야 합니다”
평소 자신이 알던 대로 했을 뿐인데 황당하게도 내 상식과는 정 반대의 위치에 주유구가 위치한 경우가 있다. 주유구를 같은 방향으로 만든다면 주유소에서 헤맬 필요 없이 더 편할 텐데, 왜 주유구의 위치는 자동차마다 제각각인 것일까?
왼쪽 주유구 – 현대자동차 & 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주유구가 왼쪽에 위치해 있다. 이런 경우 주유소에서 돌아갈 필요 없이 주유기에 차를 바로 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긴급주유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몸이 도로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때문에 우측통행을 하는 국가의 경우 주유구가 오른쪽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우측통행을 하는 한국에서 반대편인 왼쪽에 주유구를 만든 것 일까.
왼쪽 주유구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출범 배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초창기 현대자동차는 미쯔비시, 기아자동차는 마쯔다와 기술 제휴를 맺어 자동차를 만들었다. 좌측통행인 일본에서 차를 들여왔기 때문에 핸들의 위치는 오른쪽으로 옮겼지만, 자잘한 부분은 수정하지 못한 채 그대로 남게 되었다.
오른쪽에 위치한 머플러 역시 기술 재휴의 잔재라 할 수 있다. 머플러는 고온의 배기가스가 주유 시 새어나온 휘발유나 경유와 반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유구와 반대편에 위치한다. 때문에 왼쪽에 주유구가 위치하다 보니, 자연스레 머플러는 오른쪽으로 가게 되었다.
이처럼 우핸들 국가 자동차의 특징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 불편한 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미쯔비시의 파제로를 도입하여 생산한 현대정공의 갤로퍼는, 우측으로 열리는 트렁크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생산했다. 좌측통행인 일본과 달리 우측통행인 한국에서는 트렁크도어가 인도 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짐을 실을 때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안전에도 큰 문제가 있었다. 특히 엔진의 위치는 엔진 운전자의 생사를 가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핸들 국가인 일본의 엔진 위치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90년대까지 충돌 사고 시 엔진이 운전자를 덮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단점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청출어람 하면서 점차 고쳐졌지만, 왼쪽 주유구는 과거의 관습으로 남아 있다.
오른쪽 주유구 – 대우자동차
대우자동차는 오른쪽에 주유구를 가지고 있다. 한국과 같은 우측통행 국가인 미국의 GM에게 기술을 제휴 받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왼쪽 주유구를 가진 자동차가 길게 늘어선 주유소에서 여유롭게 주유할 수 있다는 나름의 장점도 가지고 있다.
특히 대우는 GM에서 한솥밥을 먹던 독일의 오펠에게 많은 제휴를 받았다. 때문에 대우는 유럽과 미국의 통행방향에 맞는 오른쪽 주유구와 왼쪽 머플러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대우의 모든 자동차가 오른쪽 주유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스즈키 알토’와 ‘혼다 레전드’를 바탕으로 개발된 티코와 아카디아는, GM이 아닌 일본에서 기술을 제휴 받았다. 때문에 대우자동차지만, 현대,기아처럼 왼쪽 주유구를 가지고 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 르노삼성자동차
왼쪽과 오른쪽 주유구를 동시에 사용하는 기업도 있다. 기술 제휴에 많은 변화를 겪었던 르노삼성자동차가 대표적이다.
삼성자동차가 르노에 인수되기 전, ‘닛산 세피로’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SM5와 ‘닛산 블루버드 실피’를 베이스로 한 SM3는 일본의 기술 제휴를 받은 자동차답게 왼쪽 주유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2004년 닛산이 르노삼성에게 기술제휴를 중단하면서, 르노삼성은 프랑스의 르노에게 기술제휴를 받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르노삼성자동차는 닛산 시절 가지고 있던 왼쪽 주유구에서 유럽의 통행방향에 맞는 오른쪽 주유구로 변화한다.
사실은 꿈보다 해몽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은 한국에서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내용이지만, 사실 다수의 사례를 이용한 추측에 불과하다. 일본은 왼쪽 주유구, 미국은 오른쪽 주유구로 구분 짓는 것은, 몇몇 사례만 보더라도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쌍용은 대부분 왼쪽 주유구를 가지고 있지만, 일본의 ‘이스즈 트루퍼’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쌍용의 코란도 훼미리는 오른쪽 주유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쌍용이 의도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이스즈 트루퍼가 오른쪽 주유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우의 첫 SUV였던 원스톰은 왼쪽 주유구를 가지고 있다. 이런 특징은 후속모델인 이쿼녹스까지 이어지는데, 대우는 물론 쉐보레에서도 몇 안 되는 왼쪽 주유구 차량이다. 이러한 사례는 일본과 미국으로 나뉜 주유구 위치에 대한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날려버린다.
현대기아자동차가 일본의 잔재로 인해 무조건 왼쪽 주유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기아자동차의 쏘렌토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타파한다. 초창기 쏘렌토의 경우 오른쪽 주유구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통행방향에 따라 주유구의 위치를 바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미 완성된 디자인에 맞추어져 있는 생산 설비를 주유구 하나 때문에 바꾸는 것은 이윤을 낭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에디터 한마디
이번 컨텐츠를 조사하면서, 국가별 통행방향에 따라 주유구의 위치가 바뀐다는 기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수많은 유저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사가 오랜 시간 동안 퍼지면서 ‘현대,기아는 일본 따라 왼쪽 대우는 미국 따라 오른쪽’라는 고정관념은 기정사실이 되고 있었다.
주유구의 위치가 꼭 어느 한쪽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또한 자동차가 하나의 컨셉을 고집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자동차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유연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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