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막을 두른 자동차를 찍은 사진을 ‘스파이샷(Spy shot)’이라 부른다. 제조사 입장에서 최대한 노출되고 싶지 않겠지만, 주행 테스트 덕에 여러 매체를 통해 스파이샷이 소개되곤 한다. 대신 정식 공개 전까지 최대한 디자인 노출을 막기 위해, 여름에 패딩 점퍼를 입듯 검은 위장막을 장착한다.
제조사 입장에서 완성되지도 않은 차량이 완전히 노출되면 타 제조사에 향후 전략을 모두 알리는 것과 같다. 때문에 위장 작업은 매우 중요한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필름에 새겨진 여러 기하학 패턴은 마치 군복에 새겨진 ‘카모플라쥬(Camouflage)’처럼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공개 수준에 따라 다른 위장막
차량들이 걸치고 있는 위장막을 보면 어떤 제조사에서 운용 중인 모델인지 나름 짐작해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풀 모델 체인지 여부다. 일반적으로 스파이카를 가리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필름과 차 외부를 덮는 위장 천이 존재한다.
제조사는 제대로 공개하지도 않은 디자인 요소가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매우 꺼린다. 때문에 위장 필름을 부착하고 법과 안전 상 문제가 없는 범위 내에서 가릴 수 있는 모든 부분을 위장 천으로 덮는다. 참고로 차량 전신에 기하학 패턴의 필름이 붙어 있는 것은, 캐릭터 라인이나 디자인 디테일을 파악하기 어렵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다.
운전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유리창과 각종 미러 그리고 라디에이터 그릴 부위 등을 제외하면 모두 가려져 있는 셈이다. 다만, 휠 디자인 같이 필름이나 천을 덮기에 어려운 부위들은 그대로 노출되어, 어떤 휠 디자인이 적용될 지 예상하기는 비교적 쉬운 편이다.
가령 스포티함을 강조하는지,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지, 친환경 모델인지 등을 유추할 수 있다.
반면, 부분 변경(페이스 리프트 등) 모델은 출시된 차량의 내·외관을 조금 다듬는 수준이기 때문에 차량을 가리기 위한 노력이 상대적으로 적다. 대부분 필름을 이용해 가리는 경우가 많고, 변경 될 부위로 한정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차량의 범퍼나 도어, 트렁크 부분만 위장 필름이 붙어 있다면, 부분 변경 모델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100%는 아니지만 합리적인 판단이다.
우리나라는 왜 안 될까?
한편 국내 스파이샷을 두고 오가는 말 중 “왜 한국은 스파이카를 찍으려고 하면 막아서거나 멀리서만 찍게 하는 것이냐”며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포착된 대부분의 스파이샷은 원거리에서 급하게 촬영했거나 혹은 테스트 드라이버가 없을 때 몰래 촬영한 경우가 많다. 이는 제조사가 자신들의 디자인 침해. 즉, ‘지적 재산권’을 이유로 촬영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주행 중인 스파이카에는 자그마한 안내문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바로 촬영 금지 안내문이다. 공식적으로 해당 차량의 촬영을 막아서겠다는 의중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촬영에 임했을 경우 추후 제조사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불이익을 입을 수 있다.
물론, 국내에서도 공공도로 위를 움직이는 스파이카를 원거리에서 찍은 것을 일일이 신고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느 정도 마케팅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렇게 사소한 부분까지 사사건건 걸고넘어질 경우 되레 기업 이미지만 안 좋아질 수 있다. 다만, 위장막을 강제로 들춘다거나 무단으로 차량에 탑승해 촬영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된다.
일례로 몇 년 전 한 자동차 동호회의 스파이샷 소송사건을 언급할 수 있다. 동호회 회원 중 한 명이 시험주행을 위해 항공기에 적재 예정이던 모회사의 신형 차량 실내를 촬영 및 무단 배포해 문제가 생겼다. 제조사는 이 사실을 파악한 즉시 게시자를 고소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국내 스파이샷 문화를 두고 도가 지나치다고 언급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의견의 배경은 유럽이나 미국의 스파이샷 때문이다. 해외에서 포착된 대부분의 스파이샷은 화질도 뛰어난 데다 실내에 디테일한 부분까지 아주 가까이서 촬영된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국내 자동차 매체들의 경우 북미 자동차 전문 매체에서 공개한 스파이샷을 인용해 제조사들의 신차 혹은 부분변경 차량의 변경 점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사진보다 더욱 좋은 퀄리티의 사진을 이용할 수 있어 인기가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과 북미지역에서 촬영하는 스파이샷은 합법일까? 결론만 말한다면 국내와 동일하게 불법이 맞다. 다만, 이에 대응하는 태도와 전문 매체가 지닌 파워의 차이다. 먼저, 해외의 경우 제조사들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특히, 자동차 시장에서 성공의 척도라 불리는 북미지역의 경우 스파이샷을 완벽한 마케팅 수단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의도적인 노출을 통해 출시가 임박한 차량을 사전에 공개하고 소비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구형 모델의 판매량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신차 특수를 톡톡히 노릴 수 있어 인기가 많다.
또한, 스파이샷을 촬영하는 이들의 고급 장비도 한몫한다. 흔히 ‘대포알’이라 불리는 대형 렌즈 등을 이용해 전문적으로 스파이샷을 찍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근거리에서 촬영할 경우 국내와 마찬가지로 불편한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먼 거리에서 스파이카가 출몰하기를 기다리다가 촬영하는 것이다.
반면, 근거리에서 아예 대놓고 촬영에 임하는 경우도 있다. 단, 이때는 공식적인 동의를 구하는 경우가 지배적이다. 차량 실내가 공개되는 것도 모두 사전 동의하에 촬영에 임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국내의 경우 동의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외부 촬영만 가능한 것과는 상반된다.
또한, 자동차 전문 매체의 힘도 한 몫한다. 유럽 유명 매체인 아우토 모토 운트 슈포트(AMS), 아우토 빌트 등은 전 세계의 수많은 구독자가 존재하는 유명 자동차 매체다. 영향력 있는 매체의 평가는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자동차 중심지인 유럽과 미국 내 스파이샷이 오히려 예비 소비자들의 기대를 끌어올릴 수 있으니 말이다.
에디터 한마디
스파이샷은 제조사의 대외비 자료가 공개되는, 어쩌면 부적절 할 수도 있는 사진이다. 다만, 이를 적절히 공개 및 사용할 경우 좋은 홍보 수단이 되기도 한다. 즉, 양날의 검인 셈이다.
한편, 국내 스파이샷에 대한 제조사의 대응이 다소 지나치다는 의견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한국도 글로벌 TOP 10에 오른 ‘자동차 선진국’인 만큼, 제조사들이 스파이샷에 대한 빗장을 좀 더 열어 주는 건 어떨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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